기타/역사

조선 중국 요나라

라무네 종교tv 2016. 11. 23. 16:09

조선과 중국 그리고 요나라의 관계




조선은 속국들의 우두머리 나라이고, 조선은 속국들이 중국에게 조공하게끔 만드는 나라라고, 필자가 계속 말하여 왔는데 정말일까? 조선은 부모의 나라이며 중국은 자식의 나라이고, 조선의 왕이 중국의 황제보다 신분이 더 높다고, 필자가 계속 말하여 왔는데 정말일까?


조선왕조실록의 한 기사에서 알아보자. 기사의 내용을 올바르게 해석하면 아래와 같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조선이 요나라에 통신사를 보냈고, 요나라는 이에 답하여 중국에 조공을 하였다.


둘째, 중국은 요나라의 조공을 거절하였고, 중국은 그간의 일을 조선에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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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1권, 태조 6년 6월 23일 계묘 2번째기사 1397년 명 홍무(洪武) 30년

○柳雲回自遼東, 啓曰: "臣敬蒙差遣, 齎領謝恩進獻禮物馬匹, 四月二十一日, 到遼東, 蒙都司差官赴京奏聞去後, 住經四十二日。 至六月初三日, 欽差行人劉貴篪欽齎聖旨, 前來遼東, 對臣等開讀, 仍欽傳宣諭, 將進獻禮物馬匹, 盡行點數, 交付回還, 竝將到禮部左侍郞張炳書信一紙付臣, 臣欽依收領來了。" 其書曰:

爾者, 遼左使至, 言及朝鮮國王遣人致謝禮至境上, 本部卽時奏至尊, 有云: "朝鮮之國, 限山隔海, 風殊俗異, 天造地設, 本東夷之國。 然與中國相邇, 王者有道, 修睦隣之好, 禮尙往來, 撙節時宜而至, 是其當也。 今來云稱行謝禮, 未知中國以何恩意, 及於朝鮮, 致行謝禮? 況非時節, 禮不可納。 若欲妥生民於巿野, 不必頻勞使者, 往復艱辛, 以靜治國, 毋生邊釁。" 區區以至尊之至意答王, 王其圖之。

유운(柳雲)이 요동(遼東)에서 돌아와 아뢰었다.

"신이 공경하여 차견(差遣)을 입어 사은(謝恩)으로 진헌하는 예물을 싸 가지고 마필(馬匹)을 압령하여 4월 21일에 요동(遼東)에 이르렀사온데, 도사(都司)가 관원을 차견하여 경사(京師)에 가서 주문(奏聞)함을 입어, 떠나간 뒤에 42일을 머물러 6월 초3일에 이르렀는데, 흠차(欽差)한 행인(行人) 유귀지(劉貴篪)가 성지(聖旨)를 흠뢰(欽賚)하여 가지고 요동에 와서 신 등을 대하여 개독(開讀)하고, 인하여 선유(宣諭)를 흠전(欽傳)하고 진헌하는 예물과 마필을 모두 수(數)대로 점고하고 교부하여 돌려보내고, 아울러 예부 좌시랑(禮部左侍郞) 장병(張炳)의 서신 한 통을 신에게 주었습니다. 신이 흠의(欽依)하여 영수하여 왔습니다."

그 서신에는 이러하였다.

"근자에 요 좌사(遼左使)가 와서 말하기를, ‘조선 국왕이 사람을 보내어 사례(謝禮)하러 경상(境上)에 왔습니다.’ 하였소. 본부(本部)에서 즉시 지존(至尊)께 아뢰니, 분부하시기를, ‘조선국은 산으로 한계하고 바다로 격하여서 풍속을 다르게 하늘이 만들고 땅이 베풀어 놓았으니, 본래 동이(東夷)의 나라이다. 그러나 중국과 서로 가깝고 왕노릇 하는 자가 도가 있어 인국(隣國)과 친목하고 화호(和好)를 닦아 예로 왕래를 숭상하니, 시의(時宜)에 적합하게 맞추어 이르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지금 와서 사례를 행한다고 청하니 알 수 없지만, 중국이 무슨 은의(恩意)를 조선에 미쳤기에 사례를 행하였는가? 하물며 시절이 아니니 예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만일 생민을 시정과 초야에서 편안히 하게 하려면 반드시 사자를 자주 수고로이 왕복하게 할 것이 아니라, 조용한 것으로 나라를 다스려 변경의 흔단을 내지 말라.’ 하셨소. 구구한 제가 지존의 뜻으로 왕에게 회답하는 것이니, 왕은 도모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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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강단학계가 번역해 놓은 것만을 보고서, 필자의 주장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고,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으면 저러한 주장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학계의 번역은 엉터리일 뿐만 아니라, 번역을 열심히 제대로 하지도 않았다. 전체 내용이 엉터리인 것은 제쳐두더라도, 한문의 어법을 풀어놓기만 하였지 번역이라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한자 단어에 대한 뜻풀이나 문맥의 풀이를 제대로 한 것이 거의 없다. 물론, 한정된 인원으로 방대한 작업을 하다 보니 그럴 수 있다고,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사의 밑그림 자체가 엉터리이기에, 그 밑그림 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작업이 엉터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국과 중국의 관계를 모르고 있으니, 이 기사의 번역도 엉터리가 되는 것이다.


학계의 번역은, ‘시절에 적합하지 않아 예물을 받지 않겠다는 황제의 뜻을 전하는 명 예부의 서신’이라 말하고 있다. 즉, 조선이 중국에 예물을 보냈는데, 시절에 맞지 않는 예물은 받을 수 없다는 중국 황제의 뜻을 담은 서신을, 명나라(중국)의 예부에서 조선의 국왕에게 보낸 것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제, 제대로 번역하고 제대로 해석해 보자.


실록의 이 기사는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가>. [柳雲回自遼東, 啓曰: "臣敬蒙差遣, 齎領謝恩進獻禮物馬匹, 四月二十一日, 到遼東, 蒙都司差官赴京奏聞去後, 住經四十二日。 至六月初三日, 欽差行人劉貴篪欽齎聖旨, 前來遼東, 對臣等開讀, 仍欽傳宣諭, 將進獻禮物馬匹, 盡行點數, 交付回還, 竝將到禮部左侍郞張炳書信一紙付臣, 臣欽依收領來了。"

유운(柳雲)이 요동(遼東)에서 돌아와 아뢰었다.

"신이 공경하여 차견(差遣)을 입어 사은(謝恩)으로 진헌하는 예물을 싸 가지고 마필(馬匹)을 압령하여 4월 21일에 요동(遼東)에 이르렀사온데, 도사(都司)가 관원을 차견하여 경사(京師)에 가서 주문(奏聞)함을 입어, 떠나간 뒤에 42일을 머물러 6월 초3일에 이르렀는데, 흠차(欽差)한 행인(行人) 유귀지(劉貴篪)가 성지(聖旨)를 흠뢰(欽賚)하여 가지고 요동에 와서 신 등을 대하여 개독(開讀)하고, 인하여 선유(宣諭)를 흠전(欽傳)하고 진헌하는 예물과 마필을 모두 수(數)대로 점고하고 교부하여 돌려보내고, 아울러 예부 좌시랑(禮部左侍郞) 장병(張炳)의 서신 한 통을 신에게 주었습니다. 신이 흠의(欽依)하여 영수하여 왔습니다."]


<나>. [其書曰: 爾者, 遼左使至, 言及朝鮮國王遣人致謝禮至境上, 本部卽時奏至尊, 有云: "朝鮮之國, 限山隔海, 風殊俗異, 天造地設, 本東夷之國。 然與中國相邇, 王者有道, 修睦隣之好, 禮尙往來, 撙節時宜而至, 是其當也。 今來云稱行謝禮, 未知中國以何恩意, 及於朝鮮, 致行謝禮? 況非時節, 禮不可納。 若欲妥生民於巿野, 不必頻勞使者, 往復艱辛, 以靜治國, 毋生邊釁。" 區區以至尊之至意答王, 王其圖之。

그 서신에는 이러하였다.

"근자에 요 좌사(遼左使)가 와서 말하기를, ‘조선 국왕이 사람을 보내어 사례(謝禮)하러 경상(境上)에 왔습니다.’ 하였소. 본부(本部)에서 즉시 지존(至尊)께 아뢰니, 분부하시기를, ‘조선국은 산으로 한계하고 바다로 격하여서 풍속을 다르게 하늘이 만들고 땅이 베풀어 놓았으니, 본래 동이(東夷)의 나라이다. 그러나 중국과 서로 가깝고 왕노릇 하는 자가 도가 있어 인국(隣國)과 친목하고 화호(和好)를 닦아 예로 왕래를 숭상하니, 시의(時宜)에 적합하게 맞추어 이르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지금 와서 사례를 행한다고 청하니 알 수 없지만, 중국이 무슨 은의(恩意)를 조선에 미쳤기에 사례를 행하였는가? 하물며 시절이 아니니 예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만일 생민을 시정과 초야에서 편안히 하게 하려면 반드시 사자를 자주 수고로이 왕복하게 할 것이 아니라, 조용한 것으로 나라를 다스려 변경의 흔단을 내지 말라.’ 하셨소. 구구한 제가 지존의 뜻으로 왕에게 회답하는 것이니, 왕은 도모하소서."]


필자가 주장하는 바를 증명해주는 내용은 <나>에 담겨 있다. <가>는 별다른 문제가 없고 <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180도 달라진다. 따라서, 곧바로 <나>를 해석하여야 맞겠지만 그에 앞서, 필자의 해석과 학계의 해석에는 크게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를 짚고 넘어가겠다. 그렇게 하여야만 이 기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필자와 학계의 차이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 학계는 <가>와 <나>를 동일한 사건으로 보지만, 필자는 <가>와 <나>를 별개의 사건으로 보고 있다.

- <가>와 <나>는 전혀 상관없는 두 개의 사건으로서, <나>는 <가>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2. 학계는 <나>를 조선과 중국 사이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지만, 필자는 <나>를 중국과 요나라 사이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고 있다.

- <나>는 중국이 요나라에게, 조선이 어떠한 나라인가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다.



1.

필자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를 제대로 살펴보아야 한다. <가>에 대한 학계의 해석은 잘못된 곳이 거의 없다. 단지, 문법적으로 풀어놓기만 하였지 생소한 단어에 대한 설명이 없고(국어사전 등에 실리지 않았고), 의역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뭘 알아야 의역을 하든 말든 할 것인데, 아는 게 없으니.


<가>의 내용을 의역하여 대충 정리하면; 유운(柳雲)이 중국에 사은사(謝恩使)로 갔는데, 직접 남경(南京)까지 가지 않고 국경(요동)에서 머물렀고, 명나라의 요동지방 도사(都司)가 자기 부하(官)를 남경에 보내어 보고하였고, 42일 후 명나라의 흠차행인 유귀지가 황제의 성지를 가지고 요동에 와서, 성지를 개봉하여 유운 등에게 읽어주고, 이어서 유귀지가 조선국왕의 선유(宣諭)를 전해 받았고, 예물과 마필을 숫자대로 확인하여 영수증을 유운에게 교부하고, 유귀지가 예물과 마필을 가지고 남경으로 돌아갔고, 때맞게 도착한 예부좌시랑 장병의 서신 한 통을 도사가 유운에게 주었고, 유운이 그 서신을 받아서 조선으로 돌아왔다.


<나>에서는, {하물며 시절이 아니니 예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만일 생민을 시정과 초야에서 편안히 하게 하려면 반드시 사자를 자주 수고로이 왕복하게 할 것이 아니라, 조용한 것으로 나라를 다스려 변경의 흔단을 내지 말라}라고 하여, 분명하게 상대방의 행사례를 거절하였다.


명확하게 <나>에서는 중국이 상대방의 사례(謝禮)를 거절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학계와 필자가 같은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가>에서는 중국이 상대방(조선)의 예물을 받아주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가>와 <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별개의 사건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가>에서는 받아주었고 <나>에서는 거절하였으므로, 별개의 두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가>에 대하여 필자가 의역을 하였는데, 필자의 의역이 정말로 맞는지, 중국이 조선의 예물을 받아 준 것인지 <가>의 한 부분을 살펴보자.


[將進獻禮物馬匹, 盡行點數, 交付回還

진헌하는 예물과 마필을 모두 수(數)대로 점고하고 교부하여 돌려보내고]


학계의 해석대로, 盡行點數는 장부의 숫자와 물품의 숫자가 서로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을 말하는 것이다. 조선의 예물마필을 거절하는 것이라면, 이 작업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 당연하다. 중국이 예물마필을 받았기에 점수(點數)를 행한 것이다. 즉, 盡行點數는 ‘숫자대로 헤아리는 (점을 찍는) 일을 행하여 마쳤다’가 되는 것이다.


또, 交付라는 단어에서도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交付를 네이버의 국어사전과 한자사전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이것은, 물품을 잘 받았다는 영수증을 유귀지가 유운에게 주었다는 것을 말한다.


{교부(交付) :

1. 내어 줌. 대학 입시 원서 교부가 오늘부터 시작되었다.

2. <법률> 물건을 인도하는 일.

交付 :

1. (관청(官廳)이나 공공단체(公共團體)에서 증명서(證明書) 따위를)내어 줌

2. 물건(物件)의 인도(引渡)}


따라서, <가>와 <나>는 별개의 사건임에 틀림없다. 학계는 두 사건을 하나의 사건이라고 해석하였는데, 이는 분명히 잘못이다. <가>는 중국이 상대방의 예물마필을 받았고, <나>는 중국이 상대방의 사례를 거절하였다고, 너무나 명확하게 써져있다.


回還의 뜻도, 유귀지의 일행이 물품을 갖고 남경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말한다. 즉, ‘(유귀지의 일행이 물품을 받고) 요동에서 돌아(回) 남경으로 돌아갔다(還)’가 되는 것이다. ‘유운이 요동에서 돌아 조선으로 돌아왔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문맥상 그렇게 해석할 수 없다. 回還을 ‘조선으로 돌아오다’로 해석하게 되면, 回還의 뒤에 臣欽依收領來了가 따라와서 ‘돌아오다(回還, 來)’가 중복된다. 아니면, 유운은 일행을 먼저 돌려보내고 자기 혼자 따로 돌아온 것이 돼버려서, 총책임자가 일행과 따로 놀았다는 것을 자백하는 꼴이 된다. 즉, 回還시에 유운은 요동에 있었던 것이 되고, 來가 ‘조선으로 돌아오다’가 되는 것이다. 만약 유운이 조정(朝廷, 朝鮮)에 있다면 회환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겠지만, 요동에 있는 상태에서 회환이라는 단어를 쓸 수는 없다. 따라서, 유운의 시점에서, 유귀지의 일행이 유운의 앞에서 돌아 남경으로 돌아갔다는 뜻이 될 수밖에 없다.


{회환(回還) : 갔다가 다시 돌아옴 (네이버 국어사전, 한자사전)}


맨 앞에 柳雲回自遼東(유운이 요동으로 부터 돌아오다)이라고 나와 있는데, 국어사전과 한자사전을 만든 학계의 주장대로라면, 조정의 입장에서 ‘유운이 요동에 갔다가 다시 조정으로 돌아옴’이 되므로, 回還을 썼어야 하는데 回를 썼다. 유운의 입장에서도 자기가 요동에 갔다가 조정으로 돌아와서 보고하는 것이므로, 回還을 썼어야 하는데 來了를 썼다. 다른 곳에서는 회환을 쓰지 않고, 왜 交付回還에서만 회환을 썼는가? 즉, 交付回還은 유운의 입장에서 ‘유귀지가 영수증을 교부하고 자신의 앞에서 돌아 남경으로 돌아갔다’가 되는 것이다.


또,

[~欽差行人劉貴篪欽齎聖旨, 前來遼東, 對臣等開讀, 仍欽傳宣諭, 將進獻禮物馬匹, 盡行點數, 交付回還~]

이 부분의 화자는 유운이지만, 문맥상 행위의 주체는 모두 유귀지이다. 즉, 흠차행인인 유귀지가 성지를 가지고 요동에 왔고, 유귀지가 유운 등에게 성지를 읽어주었고, 이어서 유귀지가 유운에게서 선유를 전해 받았고, 유귀지가 예물마필을 받고 영수증을 교부하고 나서, 유귀지와 그 일행이 남경으로 돌아갔다. 다시 말하자면, <가>에서는 중국이 조선의 예물마필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


또한, 竝將到禮部左侍郞張炳書信一紙付臣에서 到가 명확하게 써져 있다. 이것은, 예부 좌시랑의 편지를 유귀지가 가져와서 유운에게 전해준 것이 아니라, 유귀지는 예물과 마필을 가지고 이미 돌아갔고, (유운이 요동을 떠나기 전) 때맞게 중국조정으로부터 요동에 도착한 예부 좌시랑 장병의 서신을, 요동의 도사가 유운에게 주었다는 뜻이다. 즉, 회환은 유귀지가 남경으로 돌아간 것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고, 장병의 서신을 유운에게 전해준 사람은 유귀지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예부의 편지가 도착한 때가, 유운이 흠차행인을 기다리던 42일 동안이었는지, 유운이 흠차행인 유귀지를 만나던 시간이었는지, 유귀지가 남경으로 돌아가고 나서 요동을 떠나기 바로 직전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유운에게 예부의 편지를 전해준 사람이 유귀지가 아님은 분명하다. 예부의 편지는 별도의 경로를 통해 유운에게 전해진 것이다. 즉, 회환의 주체는 유귀지이고, 유귀지가 영수증을 유운에게 주었으며, 중국이 조선의 예물마필을 받았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또한, 仍欽傳宣諭에서 宣諭를 전해 받은 사람도 유귀지이다. 유운이 유귀지에게 선유를 전해준 것이다. 유귀지가 유운에게 건네준 것이 아니다. 선유는 조선국왕의 선유이고, 조선국왕이 중국의 백성에게 훈유(訓諭)를 공포한 것이다. 중국황제의 성지를 유귀지가 유운 등에게 읽어주었고, 따로 예부의 서신을 받아왔으니, 당연히 선유는 조선국왕의 선유인 것이다. 예물마필을 주면서, 예물마필을 주는 이유가 담긴 것이 바로 조선국왕의 선유인 것이다. 만약 학계의 주장대로, 조선국왕이 중국황제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이라 하더라도, 예물마필을 바치면서 달랑 물건만 바치고 아무 편지도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따라서, 성지는 조선의 사은(謝恩)을 잘 받았다는 중국황제의 답변이고, 선유는 사은을 내려주는 조선국왕의 담화문이 되는 것이다. 즉, 조선국왕이 중국황제 보다 더 윗사람이 되는 것이다.


결론은, <가>와 <나>는 동일 사건이 아니라 별개의 두 사건임이 명확하다. <가>에서는 중국이 상대방을 받아주었고, <나>에서는 중국이 상대방을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2.

<가>와 <나>는 별개의 두 사건임이 분명하고, <가>는 조선과 중국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렇다면, <나>도 조선과 중국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인가? 아니다, <나>는 중국과 요나라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학계는 동국과 중국의 관계를 전혀 모르고 있어서, 한국사의 기초를 엉터리로 다졌다. 그 기반 위에 한국사를 세웠기 때문에, 한국사의 모든 것이 왜곡되어 있다. 실록의 이 기사도 마찬가지이다. 정말로 동국과 중국의 관계를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한국사의 모든 것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동국과 중국의 관계를 올바로 세울 수 있다면, 한국사의 수많은 의문을 모두 풀 수 있고, 가짜가 아닌 진짜 한국사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중국과 요나라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 말하였는데, 명확하지는 않다. 알려진 역사지식에서는, 당시(1397년)에 요나라로 불린 나라가 없었다. 그래서, 요나라(遼)가 아닌 여진(女眞)일 수도 있다. 요나라와 금나라의 강역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기도 하고, 요하(遼河) 근방과 그 이북을 거점으로 하는 등의 공통점이 있어서, 대한민국을 고려(Korea)라 부르는 것처럼, 내몽고와 만주지역 등의 정치집단을 편의상 요(遼)라 불렀을 수 있다. 또는, 서요(西遼)가 망한 후에 그 지역에서 일어난 정치세력을 요라 불렀을 수도 있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나>는 조선과 중국 사이에 일어난 일이 절대 아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를 자세히 살펴보자.


<나>를 내용적으로 세분하면;

(가). [爾者, 遼左使至, 言及朝鮮國王遣人致謝禮至境上, 本部卽時奏至尊, 有云]

(나). ["朝鮮之國, 限山隔海, 風殊俗異, 天造地設, 本東夷之國。 然與中國相邇, 王者有道, 修睦隣之好, 禮尙往來, 撙節時宜而至, 是其當也。 今來云稱行謝禮, 未知中國以何恩意, 及於朝鮮, 致行謝禮? 況非時節, 禮不可納。 若欲妥生民於巿野, 不必頻勞使者, 往復艱辛, 以靜治國, 毋生邊釁。"]

(다). [區區以至尊之至意答王, 王其圖之]

등의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렇게 나누어서 살펴보면, 더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가)와 (다)는 예부 좌시랑이 말하는 것이고, (나)는 황제가 말하는 것이다. 또, (가)의 안에 있는 及朝鮮國王遣人致謝禮至境上은 요좌사(遼左使)가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가)와 (다)는 좌시랑이 조선의 왕에게 말하는 것이고, (나)는 황제가 사례를 보낸 상대방 나라에게 말하는 것이다. 즉, <나>를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분하면, (가)(다)와 (나)의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은, (가)(다)의 상대방과 (나)의 상대방이 동일하지 않다는 말이다. 학계는 동일하다고 보는데, 필자는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먼저, (가)를 살펴보자.


爾者 ; 近者의 뜻이라 한다. 근래에, 얼마 전에, 최근에 등의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遼左使 ; 학계는 ‘명나라 요동지역의 좌사라는 벼슬을 가진 관리가 중국조정(中朝)에 올라가서 보고하였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遼左使를 명나라의 관리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다. 만약 요좌사가 명나라의 관리라면, 조선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중국의 보고체계를 자세히 알려줄 이유가 없다. ‘너희 조선에서 행사례를 보냈는데 황제께서 말씀하시길’이라고 말하든지, 황제가 직접 조선왕에게 성지나 편지 등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주 생뚱맞게, 예부 좌시랑이 편지를 보내는 둥, 새삼스레 근자에 있었던 일이라는 둥, 요좌사가 도착해서 말했다는 둥, 조선국왕이 사람을 보내어 경상에 도착했다는 둥, 예부가 즉시 황제에게 보고했다는 둥, 황제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둥, 황제의 말을 예부 좌시랑이 전달해주는 둥, 전혀 불필요한 일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부 좌시랑이 일의 경과를 조선왕에게 자세히 보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보고하고 있다.


左使는 {고려와 조선 초 전곡의 출납, 회계 사무를 총괄하던 삼사(三司)의 정2품 관직}인데, 아무리 나라가 다르다 하더라도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중국과 그 속국인 조선인데, 조선과 달리 중국에서는 좌사가 지방 관리의 명칭으로 쓰일 수는 없다. 즉, 遼左使는 명나라가 아닌 요나라의 관리이다. 예물을 운반하는 일행은 국경에서 머물러 있고, 요나라의 좌사가 중조까지 와서 예부를 방문한 것이고, 이를 예부에서 황제에게 보고한 것이다. 이러한 일의 경과를 중조의 예부에서 조선왕에게 보고한 것이다. 사신의 도착을 중조에 알린 사람이 요좌사라는 것을, 조선왕에게 가르쳐줄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그렇게 한 까닭은, 요좌사가 명나라의 관리가 아닌 요나라의 관리였기 때문이다.


及朝鮮國王遣人致謝禮至境上 ; 이 부분을 ‘조선국왕이 사례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어 경상에 도착하였다’고 해석하였는데, 이 구절은 及朝鮮國王遣人과 致謝禮至境上으로 나누어서 해석해야 한다.


及 : 미치다, 이르다, 함께, 더불어, 끼치다.


조선국왕이 遣人을 하였다 하는데, 여기의 人은 사신(使臣)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고, 본국에서 속국에 보내는 통신사(通信使)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즉, 及朝鮮國王遣人은 ‘조선국왕의 견인이 미쳤기에, 조선국왕이 통신사를 파견하여 (우리에게) 미쳤기에, 조선국왕의 통신사가 (우리에게) 미쳤기에, 조선국왕의 통신사가 (우리에게) 이르렀기에, 조선국왕이 통신사를 보냈기 때문에’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致謝禮至境上은 ‘사례하기 위해(致) 경상에 도착하였다(至)’가 된다.


이 구절의 문장 구조를 살피면 ‘及~ 致~’가 되는데, 이것의 해석은 ‘~이 미쳤기에 ~에 이르다, ~하였기에 ~하게 되다’가 된다. 따라서, 及朝鮮國王遣人致謝禮至境上은 ‘조선국왕이 사람을 보냈기에 사례하러 경상에 왔습니다.’로 해석해야 맞다.


다음은 (나)를 살펴보자.


황제(至尊)가 상대방 나라에게 말하는 것인데, 내용에 따라 세분하면 아래와 같이 세 부분으로 나뉜다. a는 중국의 입장에서 조선이 어떠한 나라인가를 매우 긍정적으로 설명하고 있고, b는 중국이 상대방의 사례를 거절하는 것이고, c는 중국이 상대방에게 훈계하는 것이다. 특히, a는 황제가 상대방에게 조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인데, 왜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것인지 고찰해야만, 이 기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a. [朝鮮之國, 限山隔海, 風殊俗異, 天造地設, 本東夷之國。 然與中國相邇, 王者有道, 修睦隣之好, 禮尙往來, 撙節時宜而至, 是其當也。]

b. [今來云稱行謝禮, 未知中國以何恩意, 及於朝鮮, 致行謝禮? 況非時節, 禮不可納。]

c. [若欲妥生民於巿野, 不必頻勞使者, 往復艱辛, 以靜治國, 毋生邊釁]


만약, 중국과 요나라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고, 조선과 중국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a에서는 조선에 대해 칭찬을 하다가 c에서 갑자기 훈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a와 b만을 말하고 c는 말하지 않거나, b와 c만을 말하고 a는 말하지 않았어야 문맥상 흐름이 자연스럽다. 또, 중국의 변경을 조선이 어지럽게 하겠는가, 요나라가 어지럽게 하겠는가?


황제가 말하는 부분인 (나)를 풀이하면, 아래와 같다. 조선이 동방의 본국이라는 전제하에 해석하여야 모든 것이 풀린다. 그렇게 하면, 중국이 거절하는 두 가지 이유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본국인) 조선이라는 나라는 산으로 한정되고 바다로 막히어서 풍습이 특수하여 속세와 다르도록, 하늘이 만들고 땅이 설계하여서, 본래는 동이 지역의 나라이지만 (너희 동이가 아닌) 중국과 더불어 서로 절친하다. 왕들이 도 닦음이 있어서, (외국과) 화목하게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오히려 예로 숭상하여서, (아무 때나 왕래하는 것이 아니라 예에 맞게) 왕래를 알맞게 절제하고 시기에 맞게 하여 (지금에) 이르렀는데, 이는 그것이 당연하다. (조선이 통신사를 너희에게 보냈기 때문에 너희가) 지금 와서 말하기를 사례를 행한다고 칭하나, (절친한 조선의 통보를 받은 적이 없는) 중국은 무슨 은혜로운 뜻이 조선에 있는지 (조선이 너희에게 통신사를 정말로 보냈는지, 보냈으면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데, (너희 말만 갖고) 사례를 행하려 하는가? 더구나 시절의 예가 아니니 (조선이 시절의 예를 어길 리가 없는데 너희 말만 갖고) 받아들일 수 없다. 만약 생민을 시정과 초야에서 편안하게 하려면, 자주 수고롭게 사자를 왕복하는 고생을 할 필요 없이, 조용한 것으로써 나라를 다스려 변경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朝鮮之國 ; 朝鮮 또는 朝鮮國이라 하지 않고 ‘~之~’를 써서 朝鮮之國이라 한 것은, ‘조선국, 조선의 나라’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 조선이라는 지역’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風殊俗異 ; 風習과 風俗(속의 풍습)은 같은 뜻의 단어가 아니다. 殊는 단순히 다르다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다름’을 뜻하는 글자이다. 殊功, 殊怪, 殊常, 殊技, 殊力, 殊才, 殊品 등의 쓰임에서 알 수 있듯이, 보통의 것과는 다른 특별함을 가리키는 글자이다. 俗은 ‘俗世, 世上, 天下’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대륙을 뜻하는 글자로서, 동국을 제외한 동방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異는 기원은 같으나 현재는 아주 달라진 것을 뜻하는 글자이다. 즉, 風殊俗異는 ‘풍습이 독특하여 세상과 다르다, 풍습이 특별하여 속세와 다르다’는 뜻으로 풀이해야 된다.


東夷之國 ; 이것도 역시, ‘동이국, 동이의 나라’가 아니라 ‘동이 지역의 나라, 동이의 땅에 있는 나라’라는 뜻으로서, 조선이 동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동이의 지역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졌다는 것을 말함이다. 東夷는 최소한 조선시대에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단어가 확실한데, 미개하다(未開)는 의미로 쓰였고, 일본이나 여진 등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였다.


與中國相邇 ; 邇는 단순히 지리적인 가까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가까움을 말하는 글자이다. 즉, ‘절친하다, 사이가 좋다’는 뜻으로서, ‘중국과 함께 서로 가깝다, 중국과 함께 서로 친하다’로 풀이해야 한다. 이것은, 조선과 중국은 긴밀히 협조하는 관계로서, 조선이 요나라에 통신사를 보냈다면 반드시 중국에 통보하였을 것이라는 뜻이다.


王者有道修 ; 王者는 ‘왕들’이라는 뜻이다. 道修는 修道이다. 옛날에는 統一을 一統이라 하고 名聲을 聲名이라 하였는데, 그것과 같다. ‘왕들이 도 닦음이 있어서’의 뜻이다.


睦隣之好禮尙 ; 睦은 친절함을 뜻한다. 邇가 절친함을 말하는 것이라면 隣은 ‘가까이 하다, 가까이 두다’라는 뜻이다. 사대교린(事大交鄰:중국을 키우고 외국을 가까이 함)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睦隣은 외국에 대한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서, 중국에 대한 자세인 邇와 구별된다. 隣(鄰)은 첩 자식에 대한 가까움이고 邇는 본처 자식인 장남에 대한 가까움이다. 즉, ‘목린의 좋아함도 오히려 예로 높여서, 외국과 목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오히려 예로 받들어, 외국과 화목하게 가까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오히려 예로 승화시켜’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往來撙節時宜而至 ; 時節은 撙節時宜의 준말이고, 時節의 뜻은 어떤 계절이나 특정한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분위기, ~을 하기에 적당한 때’를 뜻하는 말이다. 예를 들면,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전운이 감도는 시기, 전운이 감도는 시절, 세상이 어수선 하다, 시절이 어수선하다, 무엇을 하기에 좋지 않은 시절이다, 학창시절, 청년시절, 가난했던 시절’ 등으로 쓰이는 것이다. 즉, 시절에 맞게 왕래한다는 것은, 왕래가 잦거나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왕래가 아니라, 세상의 분위기에 맞게 적절한 횟수의 왕래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뒤에 不必頻勞使者往復艱辛(자주 수고롭게 사자를 왕복하는 고생을 할 필요 없이)과 毋生邊釁(변경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이 오는 것이다. 따라서, 시절이 아니라서 행사례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은, 쉽게 말해서 ‘중국의 기분을 파악하고 행사례를 보내든지 말든지 해라’라는 말이 된다. 이것은, 이 시기에 상대방이 중국의 변경을 어지럽게 했다는 말로서, 예를 들면 상대방의 백성이 도적떼가 되어 중국의 국경(國境)을 침범하고 약탈을 하는 등의 소란을 피웠다는 뜻이다.


未知中國以何恩意及於朝鮮 ; 未知中國은 ‘중국은 알지 못한다’이고, 恩意는 ‘은혜로운 뜻’이다. 이것은, ‘무슨 은의가 조선에서 (너희에게) 미쳤는지 중국은 알지 못한다, 무슨 은혜로운 뜻이 조선에 있는지 중국은 알지 못한다’라고 해석해야 맞다. ‘중국이 무슨 은의(恩意)를 조선에 미쳤는지 모른다’로 해석하면 안 되는 이유가, ‘내가 무슨 은혜를 베풀었는지 모른다’가 맞는 것인데, ‘내가 무슨 은혜로운 뜻을 베풀었는지 모른다’가 되면 그야말로 남 얘기 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속 생각을 자신이 모르면 어쩌라는 말인가. 또, ‘내가 무슨 은혜를 베풀었는지 모른다’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이 은혜를 갚기 위해 왔으니, 네가 무슨 은혜를 입었냐고 물어보면 될 것을, ‘네가 무슨 은혜를 입었는지 내가 모르니, 너의 보은을 거절한다’라고 말하는 것도 남 얘기 하는 꼴이다. 결국, ‘조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중국은 모른다’가 맞는 것이지, ‘중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중국은 모른다’는 어불성설이 된다. a와 문맥적으로 연결하여 이 구절을 올바르게 해석하면, 조선이 요나라에 통신사를 보냈다면 절친한 중국에 통보를 하였을 것인데, 조선의 통보가 없었으니 중국은 너희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況非時節禮不可納 ; 況非時節禮는 ‘더구나 시절의 예가 아니다’이고, 不可納은 ‘받아들일 수 없다’이다. ‘시절의 예가 아니라서 받아줄 수 없다’는 중국과 요나라의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이 요나라의 사례를 거절하는 명분으로 두 가지를 내세우는데, 조선이 요나라에 통신사를 정말로 보냈는지 알 수 없다는 것과, 중국의 변경을 요나라가 어지럽게 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이 구절은 두 번째 명분이다. 況은 ‘하물며, 더구나’의 뜻을 가진 글자로서, 부수적인 명분이라는 뜻이다. 분명히, ‘시절의 예가 아니다’는 주된 명분이 아니라 부수적인 명분이다.


a에서 조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a를 세분하면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조선은 속세와 다른 특별한 지역으로서, 동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도 중국과 절친하다는 것과, 왕들은 외국과 왕래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도수가 있어서 예에 맞게 왕래한다는 것이다. 조선이 중국과 절친하다는 것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여진, 일본 등의 동이가 아니라 중국과 절친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조선과 중국의 특수한 관계를 설명한 것으로서, 조선이 중국에게 통보도 하지 않고 요나라에 통신사를 보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선이 시절의 예에 맞게 왕래한다는 것은, 조선이 시절의 예를 어기면서 요나라에 통신사를 보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a에서 중국의 황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조선과 중국은 긴밀히 연락하는 사이라는 것과, 조선은 시절의 예를 지킨다는 것이다.


중국의 태도는, 조선의 통보를 받은 적이 없는데, 요나라의 말만 믿고서 사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시절에 맞지 않는 지금의 사례는, 시절의 예에 맞게 왕래하는 조선의 뜻이 아닐 것이므로, 요나라의 말만 믿고서 사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말로 조선이 요나라에 통신사를 보낸 것인지, 통신사를 보냈다고 하여도 중국과 요나라가 서로 왕래하기를 조선이 바라는 것인지, 중국이 요나라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예부에서 사실 확인과 교통정리를 위해 조선왕에게 그간의 일을 보고한 것이다.


만약 학계의 해석대로 조선과 중국의 사건이라면, a를 요약하면 ‘절친한 중국을 본받아 조선은 시절에 맞게 왕래해야 한다’가 되므로, 거절하는 주된 명분은 ‘지금의 사례는 시절에 맞지 않아 거절한다’가 되어야, 문맥상 자연스럽다. 그런데, ‘시절에 맞지 않음’은 부수적인 명분이 돼버리고, 뜬금없이 ‘무슨 은혜가 미쳤는지 모른다’가 주된 명분이 되어 있다. 앞에서 구구절절 조선이 어떠해야 한다고 떠들어 놓고, 뜬금없이 중국이 조선에게 어찌하였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황당할 따름이다. 앞에서 조선의 왕래가 시절에 맞아야 한다고 떠들었으면, 뒤에서는 조선의 왕래가 시절에 맞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더구나 시절에 맞지 않음’은 부수적인 명분으로서 생략해도 되는 것이다. 또, 주된 명분인 ‘무슨 은혜가 미쳤는지 모른다’는 갑자기 어디에서 튀어 나왔는가? 학계의 해석은 문맥상 전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중국과 요나라의 사건이라면 말이 된다. a에서 말하는 것은, 중국은 조선과 절친해서 조선과 긴밀하게 통보를 주고받으며, 조선은 시절에 맞게 왕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이 요나라에 통신사를 보내서 요나라가 중국에 사례하는 것이라면, 중국은 정말로 조선이 통신사를 보냈는지, 통신사를 보냈으면 왜 보냈는지, 조선의 통보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으니, 요나라의 말만을 믿고 사례를 받아줄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조선은 시절에 맞게 왕래를 하게 하는데, 지금 중국과 요나라는 왕래할 시절이 아니므로, 조선이 왕래하게 하였다는 요나라의 말만을 믿고 사례를 받아줄 수 없는 것이다. 조선이 중국에 통보하는 것을 빠뜨린 것인지, 요나라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요나라가 조선의 뜻을 오해한 것인지, 이것을 알기 위해 예부에서 조선왕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若欲妥生民於巿野 ; 국제관계에서 사신이 왕래하는 여러 이유 중에, 주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즉, 백성을 편안하게(妥) 하는 것이다. 특히, 외국이 중국과 교류하게 되면, 대체로 외국은 여러 가지로 이익을 얻는다.


不必頻勞使者往復艱辛 ; 이 부분은 바로 앞에서 언급한 撙節에 대응하는 구절이다. 횟수를 알맞게 절제하여 왕래가 잦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以靜治國毋生邊釁 ; 時宜에 대응하는 구절이다. 중국의 변경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는 훈계를 하는 것이다. 사신을 왕래하는 것 보다, 정(靜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백성이 편안해진다는 뜻이다. 정(靜)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백성을 정착시켜서 떠돌이나 도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다)를 살펴보자.


區區以至尊之至意答王 ; 학계는 이 부분의 해석에서, 중국이 상국이고 동국은 하국이므로, ‘구구한 제가’라고 해석하여 ‘구구하다’의 주체를 예부 좌시랑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야 말로 자의적인 해석이고 역사왜곡이다. 區區의 뜻을 네이버 국어사전과 한자사전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구구(區區)하다

1. 각각 다르다.

2. 잘고 많아서 일일이 언급하기가 구차스럽다.

3. 떳떳하지 못하고 졸렬하다.

區區

1. 제각기 다름

2. 떳떳하지 못하고 구차(苟且)스러움

3. 잘고 용렬(庸劣)함]


역사적 지식이나 선입견 없이 이 문장만 놓고 해석하면 ‘구구한 지존의 뜻으로써 왕께 답합니다.’가 된다. 그런데, 선입견을 갖고 해석하면 ‘구구한 제가 지존의 뜻으로써 왕께 답합니다.’로 해석하게 된다. 필자의 해석이 맞을까, 학계의 해석이 맞을까?


사전이나 일상의 쓰임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구구하다’는 조금 부정적인 의미로서, 처지나 상황, 물건 등을 겸손하게 표현할 때 사용한다. 그래서, 자신의 변명이나 주장, 얘기 등을 겸손하게 표현할 때도 사용한다. 학계는 이것을 잘 알고 있기에, 중국의 황제가 동국의 왕보다 신분이 더 높다는 선입견에 의해, ‘구구한 제가’라고 해석하여 좌시랑이 구구하다고 번역을 한 것이다.


그러나, 문맥상, 문장의 구조상 ‘구구한’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지존의 지의’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 변흔을 일으키지 말라’라고 구구하게 얘기를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구구한 지존의 뜻으로써 왕께 답을 구합니다.’라고 번역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국의 왕이 중국의 왕보다 신분이 더 높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구구한 제가’라고 번역하면, 좌시랑 장병 자체가 구구하다는 뜻이 되고, 장병의 무엇이 구구하다는 뜻은 되지 않는다. 사람 자체를 구구하다고 표현하는 경우는 없으니, 장병이 스스로를 구구하다고 표현할 자신의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도입부에 한 문장이 있을 뿐, 황제의 말이 구구하게 늘어져 있다.


王其圖之 ; 문제가 생겼으니, 조선의 왕에게 그 답을 구하고, 조선의 왕이 답을 그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왕께서는 그것을 그리십시오, 왕께서는 그것을 도모하십시오, 왕께서는 그것을 도모하여 답해주십시오’라고 해석해야 되는 것이다.{도모하다 :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대책과 방법을 세우다}


之는 앞에 있는 答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였다. 즉, 答王을 ‘왕께 답하다’가 아니라 ‘왕께 답을 구하다’로 해석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석해야, 答王王其圖之가 ‘왕께 답을 구하니 왕께서는 그것을(해결책을) 도모하십시오, 왕께 답을 구하니 왕께서는 그것을(해결책을) 도모하여 답하십시오(之)’라고 자연스럽게 해석된다. 그렇지 않으면, ‘왕께 답하니 왕께서는 그것을(답을) 도모하십시오, 왕께 답하니 왕께서는 그것을(답을) 도모하여 답하십시오(之)’라고 하여 말이 되지 않는다. 만약 조선에서 사신을 보냈고, 중국이 거절하는 답을 하였다면, 조선은 그 답을 가만히 들으면 되는 것이다. 설령, 앞으로 조선이 무엇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조선의 사정이지, 중국의 예부에서 걱정해줄 일은 아니다.


아주 간단한 문법적인 문제이다. 내가 물어봐서 상대가 답변을 하면, 상대의 답변을 듣고 있으면 된다. 내가 물어봐서 상대가 답변을 하는데, 상대의 답변을 듣고 나서 무엇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논쟁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질문하면 상대방이 답하고, 다시 내가 반론하는 논쟁이 아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선택을 묻는 것이다. 조선이 사신을 보냈는데 중국이 사신을 거절한 것은, 선택의 문제이지 논쟁의 문제가 아니다. 조선이 중국의 선택을 듣고 무엇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거절하는 선택을 한 중국이, 조선이 무엇을 도모하라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론은, 중국이 조선왕에게(王) 답을 구했으니(答), 조선왕이(王) 정답을(其) 도모하여(圖) 중국과 요나라에 답하면(之)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요나라 사이에 문제가 생겨서, 지존의 뜻으로서 왕께 답을 구하니, 왕께서는 그 일을 해결해 주십시오’가 올바른 해석이 된다.


<나>를 모두 살펴봤는데, 조선과 중국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 아님이 명확하다. <가>와 <나>는 별개의 사건이고, <가>는 조선과 중국 사이의 사건이고, <가>와 <나>는 같은 시기의 사건이다. 같은 시기의 사건인데, <가>는 받아들였고 <나>는 시절이 맞지 않아 거절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즉, <나>는 조선과 중국 사이의 사건이 아님이 명확하다. 조선과 중국 사이의 사건이 아니라면, 요좌사(遼左使)와 동이지국(東夷之國)이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는데, 중국과 요나라(여진) 사이의 사건이라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가>에서는 조선의 사은사를 받아주었고, 해당 책임자인 조선사신(朝鮮使臣) 유운에게 황제가 성지로써 답을 주었다. 그렇다면, 별개의 사건인 <나>에서도 황제가 해당 책임자인 조선사신에게, 성지로써 답을 주거나 편지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해당 책임자는 어디로 사라지고, 별건의 책임자인 유운에게 거절하는 편지를 대신 전해주는가? 이것은, 명백한 모순으로서, 유운이 편지를 대신 받아오는 일은 발생할 수 없다. 즉, <나>는 조선과 중국 사이의 사건이 아님이 명확하다.


그리고, <가>는 사은사(謝恩使)에 대한 사건이다. 동국은 계속 중국에 사은사를 보냈다. 그 사은사라고 할 때의 謝恩이라는 것이 ‘은혜에 감사하다’라고 잘못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은혜를 베풀다’라는 뜻이다. 謝의 사용례를 살피면 謝禮, 謝恩, 謝罪, 謝過, 謝絶, 謝物, 代謝, 薄謝, 感謝 등인데, 가만히 고찰하면 謝는 ‘마음속의 좋은 뜻을 밖으로 표현하다’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즉, 謝는 ‘감사하다’가 아니라 ‘나타내다, 표현하다’인 것이다. 만약 ‘감사하다’이면 謝罪는 ‘죄에 감사하다’인가? 사죄는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좋은 뜻을 밖으로 나타낸 행위’인 것이다. 사은 역시 ‘좋은 뜻인 은혜를 밖으로 나타내다, 은혜를 베풀다’가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謝恩使는 중국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하여 보내는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국이 중국에 은혜를 베풀기 위해 보내는 사신이다. 우리는, 글자 한 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한국사 전체가 왜곡되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이다. 조선이 요나라에 사신을 보냈는데, 요나라는 조선에 사례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사례를 행하려 하였다. 이것은 무엇인가? 기존의 역사지식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다. 동방은 동국과 중국과 외국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동국은 동방의 바티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진짜 한국사는 결코 찾을 수 없다.


<가>는 조선이 중국에 보낸 사은사이고, <나>는 조선이 요나라에 보낸 통신사에 대한 답으로, 요나라가 중국에 보낸 조공이다. 필자의 해석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따라가면, 이 기사가 알려 주는 진실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동방(東方)의 본국(本國)인 동국(東國)은, 세상의 중심에 있는 중국(中國)이 중화(中華)를 이룰 수 있도록, 지극한 정성으로 중국에 사대(事大)하지만 외국은 교린(交隣)만 하는데, 동국의 사대를 받아 중화를 이룬 중국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중국의 문명을 외국으로 퍼지게 한다. 이것이 동방의 세계관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동방의 나라들은 중국에 조공을 하는 것이며, 일탈하는 나라는 정벌을 통해 하나가 되는데, 동국과 중국은 함께 그 목표를 이루어 나간다. 그러한 것을 가리켜 대명일통, 대청일통이라 하는 것이다.


1397년 조선과 중국과 요나라 사이에 있었던 행사례의 진실은, 동방의 세계관을 모르면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조선은 중국인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고, 동방인을 위해 동의보감을 만들었다. 그러한 조선이기에 병자호란이 일어난 것이며, 조선국왕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의 즉위식을 열어준 것이다. 조선은 동국이다. 동국의 정체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른다. 조선은 속국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조선은 속국이 중국에 조공하게끔 만든다는 사실을, 절대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