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나칼Naacal

고구리 왕가

라무네 종교tv 2013. 1. 8. 21:18
'고구리왕가'라는 글을 지워 버렸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을 전부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서문과 소제목, 그리고 그 대강의 요점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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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夷 - 15. 고구리왕가

경고 >>> 이 글은 19禁입니다.

이 글은 단순히 저(라무)의 개인적인 소견이므로 '재야는 어쩌구 저쩌구' 하며 운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글의 목적이 다른 데 있지 않고 오직 역사적 탐구심에만 있음을 염두에 두시고 '쓸 데 없는 곳'에 이용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19금이라 하면서 접근이 용이한 것은, 고구리사가 한국사에 포함되므로 한국인이라면 언젠가 이 고구리사를 배우게 될 것인데, 미성년일 때는 그 지식의 수용 가능성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인이라 하더라도 이 글을 충격 없이 수용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20세 이상인 분이라 하더라도 이 글을 읽게 될 시는 충격에 대비하여 마음준비를 단단히 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버리고 연구하는 자세로 이 글을 대하게 된다면 별 다른 충격을 겪지 않을 것이며 역사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즉, '21세기 현재 우리들의 가치관'을 '그 시대 그들의 가치관'과 일치화 시키려는 노력을 하게 되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므로 열린 마음의 자세로 이 글을 대하시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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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남당 박창화의 유고집 중 '고구리사'의 영락대제와 장수대제의 일부를 읽고 나서 본인이 평소에 탐구해왔던 동이(東夷)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동이의 어느 한 부분만을 보느라 다른 부분에 대해 소홀해 왔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전공이라 말할 것 까지는 없지만, 저의 관심사가 종교(철학, 사상, 신앙 등)에 있기에 자연적으로 역사에도 관심을 쏟게 되었습니다. 그 역사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東夷'입니다. 그리고, 그 동이의 종교에만 관심을 쏟다 보니 박창화 유고집을 처음 접하고 나서 상당한 충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다듬으니 보통의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종교를 탐구하는 저에게는 별다른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여러분께서도 다소 충격을 받으실 수 있겠지만 아무쪼록 별 탈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박창화 유고집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쟁은 이글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유고집을 위서로 보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21세기의 우리들에게는 충격적인 내용이라 위서 시비에 놓일 수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유고집의 가치를 반증한다 할 것입니다.

이 글을 시작하는 데에 있어서 우리가 연구하고 검토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동이에 대한 것입니다. 제가 동이에 대한 글을 쓰고 있기에 저의 글을 일독하셨다면 별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동이를 다룰 계획이기에, 여기에서 특별하게 동이가 무엇인지 왜 그러한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동이를 정리하면, '동이(神仙道士, 무당 등) = 용족(왕족, 귀족 등) = 형제단(비라코차, 케찰코아틀, 오안네스 등) = 나칼'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단과 나칼에 대한 얘기는 아직 글을 올리지 않았으므로 다음을 기약하겠습니다. 동이가 신선도사라는 것은 앞에서도 다루었었고 다음 글(무협문파와 국가)에서도 잠깐 다룰 예정입니다.

동이는 '구이(구한)+오가(오부)'로 보이는 데, 여러 사서들에서 왕이나 왕족을 龍이라 표현하고 있고 왕의 주변(?신체, 사물 등) 역시 용과 관련한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구리사(박창화 유고집)의 장수대제기에서도 '~祖宗之法, 以龍交龍不取雜色~'이라 하여 왕족이 용족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나는 용을 섬기고 우리나라(한국, 東國)는 삼족오를 섬긴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헛소리는 이제 그만하시기를 바랍니다.

1. 역사왜곡의 시기 ===> '초록불'이라는 사람이 高麗(高句麗)의 발음이 고리(고구리)가 아닌 고려(고구려)가 맞다며 그 근거로 언문으로 되어있는 근거들을 들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반론을 폈습니다. 그리고, 역사왜곡은 한시기 한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갑자기 행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여인국과 모계사회 ===> 여인국의 정체에 대한 추론을 했으며 모계사회는 과연 존재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결코 모계사회는 존재할 수 없으며 왜 그러한지 밝혔습니다. 일부 인류학자나 페미니스트 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모계사회는 모계사회가 아닌 여인국의 잔재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3. 근친혼(근친교배)과 근친상간의 차이 ===> 근친혼의 정체에 대해 논했으며 근친혼은 일반혼에 대한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근친혼(넓게는 족내혼)은 그들 사회에서는 일반혼이며 족외혼이 오히려 특수한 일탈 행위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 근친상간에 대해 논했고 그 심리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근친관계가 왜 금기로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어느 것이 진리에 부합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 제가 지금 제기하는 문제에 해당하는 근친혼과 근친교배의 차이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일본을 비롯, 고대 동양은 거의 전부이며 이집트 잉카 등등의 왕가에서는 근친혼을 했습니다. 어쩌다 근친혼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근친혼만을 했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근친혼이 미개인에게서 보이는 풍습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도의 문명 (신분제) 사회에서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일들과 동이가 어떻게 관련되었으며 그 원인이 된 동이의 과를 논했습니다.

4. 천강후 ===> 제가 남당유고집 중 김성겸님께서 수고하고 계신 고구리사에 대해 문제제기한 핵심 부분입니다. 저는 화랑세기를 읽어보지 않고 듣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고구리사에 비하면 화랑세기는 '새발의 피'입니다. 천강후는 광개토왕의 생모이며 장수왕의 친할머니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있어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이 하나 있는데, 그들 용족은 촌수를 따지기에 앞서 그들 모두가 용족이라는 울타리 내의 동족의 개념이 더 중요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용족의 가계도나 족보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며 용족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더 중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의 촌수를 따지는 입장에서 살펴보면, 천강후는 그 시아버지인 고국원제와 근친교배를 갖지만 자식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인 소수림제나 시동생인 고국양제와도 관계를 갖고 둘 과의 사이에 따로 자식을 두고 있습니다. 광개토제는 고국양제의 아들이며 장수제는 소수림제의 아들인 용덕의 아들입니다. 물론, 담덕인 광개토제와 용덕의 어머니는 천강후입니다. 또, 광개토제는 어머니인 천강후와의 사이에 수 많은 자녀를 두고 있으며 손자인 장수제는 하나의 자식을 두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장수제는 외방의 친구들을 위해 자신의 두 후인 천룡과 삼산을 잠자리에 들여 보내고 있습니다.(티벳인가 어딘인가의 소수민족의 풍속중에,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자기 부인을 손님의 침실로 들여보낸다는 것을 예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천룡은 천강후의 딸입니다. 서구의 처인 천룡후와 황후인 천룡후는 동명이인입니다.

그러나, 천강후가 고국원제의 며느리이기에 앞서 소수림제의 아내이기에 앞서 광개토제의 어머니이기에 앞서 장수제의 할머니이기에 앞서 제(帝)와 매우 가까운 친척(용족)이라는 것입니다. 즉, 천강후의 입장에서는 그 모두가 같은 친척으로 보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족의 여자들은 용족의 후손을 남기는 것을 큰 의무이자 권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용족 뿐만이 아니라 특수한(?) 여인들도 아이들을 만드는 그러한 의무를 짊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문제가 천강후 한명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용족 모두의 보편적인 인식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장수제의 어머니인 평양후가 광개토제를 따라 죽는데 그 이유가 저도 궁금합니다. 장수제는 어머니를 매우 많이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또, 여러 유부녀들을 후로 들입니다만 그 유부녀들 역시 같은 용족입니다. 즉, 제의 친족이라는 말입니다. 용족이 아닌 사람들이 성은을 입을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위를 부여 받습니다. 그렇다고 난교를 벌이는 것은 아니고 제의 여자(처, 아내)가 되고 제는 대신 다른 여인을 처로 주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이 때의 여인도 용족입니다. 용족은 일부다처제의 형태이지만 일처다부제는 결코 아닙니다. 여자가 평생 한사람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처다부제는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용족은 용왕을 중심으로 일체가 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말하는 바는, 현시대의 잣대로 그 당시를 판단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장담컨데, 여기의 그 누구보다 제가 용족의 풍속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제가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를 모르시겠습니까? 이유야 어떻든 과정이야 어떻든 결국, 역사라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 활용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학교선생이라면 고구리 하면 떠오르는 광개토제를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광개토제와 관계된 핵심 인물들에 대해서도 함께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위와 같은 사실을 스스럼 없이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 어린 학생들이 어른이 되고 미래를 책임질 것인데두요?

5. 왕족과 백성의 차이 ===> 우리는 용족과 일반 백성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구별이 있었습니다. 현재의 우리는 고대 아시아의 세계관을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족이 다스리는 아시아의 세계를... 왜 용이 동양에서는 숭상되는데 비해 서양에서는 악마적인 증오의 대상이 될까요? 원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에 용은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용족의 세력이 아시아, 동아시아 쪽으로 밀리면서 서양에서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특히, 유럽이 기독교 세계가 되면서 기독교 윤리에 의해 용족은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근친혼적인 문제 뿐만이 아니라 여러 이유들로 인해 서양에서는 용을 혐오의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그 능력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왕족(용족)이 백성들을 어떻게 지배했으며 왜 지배했으며 어떤 잘못을 야기했는지를 논하고 있습니다.

6. 신국과 중국의 차이(동국과 중국의 차이) ===> 아시아는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중국의 (지리적, 철학적) 위치와 동국의 위치를 밝히며 동국의 역할을 탐구해봤습니다.

7. 성과 씨의 차이 ===> 성과 씨는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저의 견해로는 성과 씨의 구별이 생긴 원인은 근친혼에 기인한 것입니다. 일부의 주장 처럼 모계사회와 연관되어 성씨의 구별이 생긴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근친혼의 용족에 있어 배우자를 여럿 두었었던 한 어머니가 그 자식을 구별하는 방법이 성이라 보입니다. 또, 같은 자식이라도 아들과 딸을 구별하는 방법으로 성을 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뭏든, 성은 모계사회의 산물이 아니라 근친혼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모계사회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8. 근친혼의 목적과 우리의 자세 ===> 기도교의 구약에 등장하는 몇몇 근친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용족의 근친혼을 비교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용족의 근친혼이 신분제의 원인이라는 것을 철학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근친혼이 신분제의 근간이 되며 수 많은 인류를 불행하게 한 원인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 근친혼이 이기심과 어떤 관련이 있고 그로 인해 어떠한 문제들을 야기했는지 짚어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잣대로 그 당시를 판단하고자 함이 아니지만 근친혼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대해 고민해봤습니다. 근친혼에 대해 지금의 잣대로 들이 댈 수 없다하여 그 근친혼의 잘못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시대상황이 아닌 절대진리의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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