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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사서를 수거한 이유

라무네 종교tv 2013. 1. 8. 21:13

이씨조선이 고대 사서를 수거한 이유

 

***이 글이 어떠한 파장의 시발점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파장을 바라지 않습니다. 제 자신이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앞으로도 벗어날 수 있을 지 막연한 그 충격을, 여러분들은 겪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東夷...'에 대한 글을 절필할 것을 여기에서 밝힙니다. 또한, 여기에도 오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저의 본업에 더욱 매진할 생각입니다. 그 동안 많은 번민에 쌓였었습니다. 나름 대로, '새로이(新)' 알게 된 사실도 있었고 몇가지 다시 깨우친 바도 있었습니다. '東夷 - 15. 고구리왕가(王家)'라는 글을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었고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결론으로 그 글을 접고, 이글을 남깁니다.***

얼마 전, 한국은행이 고액권 인물로 백범 김구와 신사임당을 선정하면서 10명의 후보 이외에 단군과 광개토왕이 추천돼었었다는 발표를 한 바 있습니다. 저는 선정된 인물의 가부를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단군이나 광개토왕이 선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을 여러번 쓸었습니다. 정말이지, 다행이 아니라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을 경우에, 한 면만을 바라 볼 수는 없고 다른 면도 보게 됩니다. 언제 어떻게냐이지 반드시 한번은 논란이 될 것입니다. 그 때, 논란이 되었을 때의 사회적, 윤리적, 정신적 등등의 파장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역사왜곡! 역사왜곡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만, 그 중의 하나의 이유는 '한 면만을 바라 보려는 의지'입니다. 다른 면이 '한 면'에 비해 가려지거나 무시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반잔의 물'을 어떻게 바라 보느냐 하는 문제와 비슷하다 할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곳도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한 예로, '1만년의 역사를 주장하는 왜곡행위'가 그러합니다. 어디에서 1만년이라는 숫자가 나옵니까? 자기가 보고 싶은 숫자만 바라보아서야 되겠습니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 하여, 자신은 이해하기 싫다 하여 왜곡을 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이 난처한 상황에 처할 것 같아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러한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잘못들은 누구나 어디에서나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이를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왜곡이란 '사실을 없애는 것', '사실을 거짓으로 대체하는 것', '사실을 무시하는 것(일부의 사실만 보는 것)', '거짓을 만들어 내는 것' 등의 행위입니다. 공에 대해서 왜곡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과에 대해서도 왜곡이 일어납니다. 제가 이 글에서 언급하는 것은 '사실을 무시하는 것(일부의 사실만 인정하는 것)'입니다. 특히, '과에 대한 사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과는 언급하지 않고 공만을 언급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용족(龍族), 즉 동이(東夷)의 공(功)과 과(過)를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7만년 동안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에 걸쳐, 그들이 쌓은 공을 헤아릴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공이 있듯 과도 엄연히 존재하고 (저의 견해로는) 공보다 과가 훨씬 더 큽니다. 사실, '東夷...'라는 글의 결말 부분에서 이 문제를 다룰 생각이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공만을 바라보려 하였기에 제가 잠시 그 부분을 망각하였다가 '박창화의 고구리사'를 통해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의 망각 덕분에 이번에 받은 충격이 그만큼 컸습니다. 그런데, 사실 언젠가는 한번 겪게 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용족의 과에 대해 종교적(철학적)으로 왜 그러한지 설명할 수 있으며, 또 그 과가 어떠한 결과들을 만들어 냈는지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설명을 하게 될 경우 반드시 민감한 부분도 건드려야 하기 때문에 덮어 두는 것입니다.

김성겸님께서, 출간을 준비 중이라 하셨는데 저로서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파장이 너무나 클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저를 식민사관이니 강단사학이니 하며 왜 자랑스런 고구리사가 알려지는 것을 반대하느냐며 저를 욕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박창화의 유고집이 위서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그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제가 박창화라는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거짓이나 장난을 쳤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사실이라 추정합니다. '어제 서울에서 교통사고가 10건이 발생했다'는 어느 일간지의 기사를 두고, 여러분은 그 기사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어떻게 밝혀 낼 수 있습니까?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는 서울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건수가 10인가 그렇지 않은 가는 작은 문제라는 말입니다. 환단고기나 박창화유고집도 그와 마찬가지로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출간을 반대하는 이유가 지나나 일본에게 트집을 잡힐까 염려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입장이므로 제가 염려하는 바를 가지고 트집을 잡지는 못합니다. 제가 반대하는 이유는 '우리들'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본론으로 와서,

다들 아시다시피, 세조와 예종 그리고 성종 때 고대 사서를 비롯한 천문지리음양 등의 도가(?선가) 서적을 수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어떻게 추론하고 계십니까? 이씨조선이 사대모화에 빠져 있어서라구요? 유교가 국교인 나라에서 도가서적을 금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구요?

물론, 그러한 이유들도 포함되었을 수 있습니다. 수거된 서적들이 환단고기에 실려 있는 내용 등과 대동소이한 내용들이라면, 왜 자신들의 자랑스런 선조의 일이 담긴 서적들에게 그런 대접을 한 것일까요?

제가 추론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여러 이유가 복합 되었겠지만, 그 중에 중요한 이유는 유교(특히, 성리학) 윤리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용족의 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사적인 일이라면 그리 문제 될 것이 없겠습니다만 여기에서 언급하는 이유는 '용족 전체의 제도적이며 보편적인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그대로 넘어 가시기 바랍니다. 굳이 알 필요 없습니다. 김성겸님을 비롯한 몇 분은 제 말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역사왜곡을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어찌 들으면 그렇게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덮자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제가 지금 이글을 쓰는 이유와 같은 고민을 이씨조선 초기의 성리학자들도 한 것 같다는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추신 : 환단고기 등도 왜곡된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 유학(성리학)이 골수에 박힌 이씨조선 사람이 만든 책이기 때문입니다. 왕실에서는 고대사서를 아예 전부 수거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만, 환단고기 등을 후대에 전한 사람들은 고대사서를 후대에 전해야 했기에 왜곡은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 100% 그대로 후대에 전했을까요? 유교윤리에 반하는 내용은 빼어 버렸을 것입니다.

계연수의 환단고기에는 고구리나 대진국의 사실(史實)이 매우 적게 실려 있습니다. 그와 반면에 박창화유고집에는 넘쳐납니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의문처럼, 박창화 개인의 취향에 의해 한 부분에 대해 유달리 집중조명한 것일 수도 있고 위조(왜곡)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서 환단고기에 실린 내용은 그 부분에 대해 내용이 너무 없습니다. '조선왕조실록'만 봐도 그 부분에 대해 잘 나와 있습니다. 박창화유고집에는 있는 것이 환단고기에는 없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편찬자들에 의한 (사실을 무시하는) 왜곡은 사실이며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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