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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를 비판할 수 있는가

라무네 종교tv 2013. 1. 8. 21:24

누가 누구를 비판할 수 있는가?

몇 분께서는 제가 말하는 바를 이해하시는 것 같은데, 상당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에 다시 한번 붓을 잡습니다.

이 고구리사략을 덮자 말자 폐기시키자 살리자 등은 이미 옛 일이 되었습니다. 설사 제가 그러한 마음을 품고, 감추자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 명약관화해 보입니다. 번역하는데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저의 마음은 감추자거나 없애자는 생각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제가 말하는 바는 두가지입니다. 역사를 현실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와 동이의 공과 과를 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한 지적탐구를 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이 단순한 지적탐구 활동입니까? 역사는 현실이고 현재와 미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 하는 것입니다.

제가 첫번째 제기하는 문제는, 해답을 여러분에게 보여준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저의 궁금증을 질문 드린 것입니다. 즉, 저는 문제점을 발견했으나 해결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선생님들의 생각은 어떤가 질문 드린 것 뿐입니다. 가르침을 구한 것 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격수님이나 강영구님과 같은 분들께서 잘 이해하고 계신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 여깁니다.

두번째 문제는,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되겠습니다만 첫번째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 소재나 계기, 문제의식에 있어 서로 연관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첫째와는 별개의 일입니다. 동이의 공과 과에 대해 우리가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이제 이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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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곳에 오는 주된 이유는 동이의 공(功) 즉, 우리 조상의 업적을 기리고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만 바라보려 하지 과는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요 며칠 동안, 여러 선생님들께서 보인 반응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공만을 우리의 현실에 적용할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배운 과를 통해서도, 반성을 통해서도 우리의 현실을 알차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하는 목적이 그런 것이 아닙니까? 좋은 점은 온고지신하고 나쁜 점은 재발하지 않도록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역사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정말 얍삭하고 짧은 생각에서 나온 방법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공만을 남들에게 떠들면 반감을 사게되고 오히려 유포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과를 함께 떠들면 공도 저절로 퍼질 수 있다는 얇은 생각이 살짝 스치기도 합니다. 남들이 우리의 과를 비판한다는 것은 공도 인정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주제는 '이 시대의 잣대로 그 시대의 가치관을 판단할 수 있느냐?'입니다.(이렇게 못 박아 놔야 딴 말씀이나 뒷북을 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남당의 고구리사와 관련하여 절대진리가 무엇이며 그것을 절대진리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얘기입니다. 고구리 용족들의 행위가 진리에 어긋나는가 아니면 상대적인 가치관에 불과한가에 대해 논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우리가 인류문명의 진화에 있어 가장 발달되어 있다 생각하는 현대를 말합니다. '잣대'는 그러한 현대의 윤리가 절대진리라는 입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시대'는 현대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미개한 시대를 가리킵니다. '가치관'은 그런 미개한 시대의 윤리를 말합니다. 문제는, 그 시대에 비해 이 시대가 진보한 것이냐와 이 시대의 윤리가 진리이냐는 것입니다. 진보한 것이 아니며 진리가 아니라면, 상대주의에 의해 그 시대를 비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은 여기에서 결론이 나지도 않을 것이고 결론 내기에도 너무 어려운 문제라 여기서 접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의 가치관과 그 시대의 가치관이 달랐느냐라는 문제로 시선을 돌려 보겠습니다. 두 시대의 가치관이 달랐다면 상대주의가 끼어들 수 있겠지만, 만약 같았다면 이 시대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잣대로 그 시대의 가치관을 판단할 수 있느냐?'라는 상대주의적인 의문을 품는 것은, 두 시대의 가치관(윤리, 도덕)이 달랐다라는 명제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시대논리나 상황논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들 잘 아실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상황논리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름 잘 이해하고 있고 잘 대처하시는 것 같습니다. 생활범죄니 정상참작이니 등등 실제의 법률에서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황논리에 의해 어떤 행위가 무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처벌이 줄어들거나 면제된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처벌에 있어서지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즉, 죄는 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대논리에 오면 사람들이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사실, 시대논리나 상황논리나 그게 그거고 같은 원리입니다. 인간의 기본 심리, 욕구, 가치관 등등 시대나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만 그 근본적인 밑바탕에는 동일한 원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문화상대주의니 어쩌니 하며 서로 다르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라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은 것 처럼 절대진리적인 기본 윤리나 도덕심은 어느 시대 어느 상황을 막론하고 똑 같습니다.

사람은 고통을 싫어하고 쾌락을 추구합니다. 뛰면 걷고 싶고 걸으면 서고 싶고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인간의 원초적 마음이듯이, 어느 시대 어느 상황하에서도 그러합니다. 따라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러한 인간의 원초적 욕구를 서로 간의 다툼 없이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윤리와 도덕심은 항상 같은 모습을 띠게 됩니다. 그런데,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런 윤리나 가치관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그러한 것이 일부 사람들에게 잘못 비쳐져서 상대주의라는 것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질서가 있는 사회라면 진리적인 윤리가 반드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사람들의 특정한 목적은 이기심에 의한 사특한 욕심일 뿐입니다. 그들의 욕심은 상대주의와는 전혀 상관없이, 진리에 위배되는 잘못일 뿐입니다. 저는 그러한 진리적인 입장에서, 종교적인 입장에서 동이의 과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모가 부정부패, 도둑질 등 부정한 방법으로 업적(?)을 쌓았고 그 혜택을 자손이 누리게 되었을 때, 그 자손인 여러분 자신이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인지상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동물적이고 원초적이며 물질적인 욕구를 말한 것입니다. 비슷한 말로 견물생심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사실, 종교적으로 보았을 때 동물적이고 물질적인 욕구도 영적인 욕구의 표현입니다. 아뭏든, 인지상정이나 견물생심은 법도가 아닙니다. 즉, 인간의 마음이 인지상정적이고 견물생심한다고 하여 마음 내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저급의 마음을 다스리고 법도대로 행해야 하는 것이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든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표입니다. 그러한 것을 훌륭하다라고 말하며 사람들이 칭송하는 것입니다. 또,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것을 본 받으려 하며 추구하기도 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비판받기도 합니다.

이제, 현 시대의 우리들을 바라 봅시다. 우리가 이완용을 비판할 수 있습니까? 친일파(?) 후손들의 부귀영화와 땅찾기에 대해 비판할 수 있습니까? 요즘의 상류층이라 불리기를 바라는 부류, 그 사람들의 잘못을 비판할 수 있습니까?

김병연이 삿갓을 쓴 이유를 다들 잘 아실 것입니다. 문제는, 잘못을 비판한 것 자체를 부정했느냐 아니면 (유교적 윤리에 의한) 자신의 조상이라는 것 때문이냐입니다. 김삿갓이 삿갓을 쓴 것은 '인지상정' 때문입니다. 인지상정이라 한 것은 지금의 제가 바라보는 것이며, 당시의 유교적 윤리가 지배할 때의 김병연으로서는 인지상정이 아닌 불효라는 죄로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김병연을 비난합니까? 그가 조상을 비판한 것도 자신을 죄인으로 여긴 것도, 그 어느 것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조부를 비판한 것은 사회적인 윤리에 의해, 자신을 죄인으로 낙인 찍은 것은 인지상정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김병연을 아무도 욕하지 않습니다. 이때, 김병연의 내심에서 조부의 행동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결론이 내려졌을 것입니다. 김병연 자신이 조부와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인지상정에 의해 조부와 같은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양심적으로 추구하는 행위는 조부와는 다를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회적인(절대진리적인) 잘못이 발생했을 때, 그 해당자의 근친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친일파 후손이 조상의 잘못을 인정하고 부정하게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을 때,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친일파 후손들이 '입 슥 닦고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십니까? 아니면,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십니까?

친일파 후손들이, 시대논리 상황논리를 들며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돌아 다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래도, 시대논리를 들어 '이 시대의 잣대로 그 시대를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조상이 어떻게 권력과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 주었던, 지금의 자신만이 배불리 먹고 즐겁게 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누리고 있는 혜택을 물려 준 조상을 숭배하면서 자신의 조상을 욕하는 사람들을 잡아 먹을 듯하는, 요즘 세태가 그런 것 같습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 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났다고 생각하는 요즘 사람들을 보면서, 여기 오시는 여러 선생님들께서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신 분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 슬픕니다.

근친혼(족내혼)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는 분이 계신 것 같은데, 공부를 더 하시라는 말씀 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족내혼과 족외혼이 상충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서로 간의 우열이 없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시 하는 근친혼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근친혼만을 한다는 것, 족외혼을 특별한 일탈 행위로 여긴다는 것, 한 집단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일반인들을 배타적으로 구분지으며 자신들을 특별한 지위에 올려 놓는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타인들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수탈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무법천지가 아닌 질서가 있는 사회에서는 근친혼 보다 족외혼이 자연스럽게 우성을 띠게 됩니다. 이것이 인류문명의 진화입니다. 현 시대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근친혼은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특권층, 그들의 범죄행위를 지속시켜주는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근친혼은 신분제 사회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근친혼이 비난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이가 근친혼을 하고 있답니다. 그것도, 아주 심한 근친교배를 하고 있으며 일부다처제를 당연시 하고 여성의 인권을 심하게 유린하고 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 시대의 잣대로 그 시대를 판단할 수 없다고 칩시다. 그러면, 이제 저 고구리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윤리 의식이 없었을까요?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각종 사서들을 살펴 보면, 저 고구리 시대에도 동서양 곳곳에서 일부일처제나 정절을 중시 여기고 본 받아야 할 미덕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이 고구리사략에서도 그러한 점이 군데군데 보입니다.(제 말이 의심되면 확인 해 보십시오.)

남들에게는 윤리 도덕을 지킬 것을 말하면서, 스스로는 천자무모라 하며 할 짓 안할 짓 다하는 그들의 행태가 비난 받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당시의 일반인들에게는 근친혼을 금하고 윤리를 지킬 것을 말하면서 스스로는 '개새끼'라는 욕을 먹기에 딱 어울리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고구리 용족들의 가치관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도 시대논리나 상대주의에 의해 그냥 넘길 수 있는 것입니까? 분명, 저러한 이기적인 태도는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잘못된 것입니다. 이럼에도, 고구리사략에서 보이는 용족의 행태를 비판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

그럼, 누가 누구를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누구도 어떤 누구를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은, 무법천지의 야생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세상을 꿈꾸십니까?

고맙습니다.

추신 : 1. 요즘, 저는 이런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우리민족의 조상'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동이(용족)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용족은 백성에 비해 상당히 소수였습니다. 피의 농도를 따지자면, 지나나 일본 등의 민족 보다 그 농도가 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 속에 흐르는 피 중에 용족의 피가 많을지 백성의 피가 많을지는 분명합니다. 결국, 우리는 용족의 후손 보다는 백성의 후손에 가깝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인지상정적인 욕심에 의해 용족을 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탐구하면서, 인류사에 있어 정치라는 것의 행태를 지켜보면서, 특정 소수가 대다수의 일반인을 가지고 논다라는 느낌은 저만이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우리가 용족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 해야 할까요? 이 부분에 대해 논하지 마십시오. 저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고, 이제는 이러한 일로 고민하기 싫습니다.

2. 급하게 두서 없이 갈겨 쓴 것이라, 문맥에 있어 혼잡함이 보이더라도 이를 감안하시고 널리 양해하셔서 글을 이해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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