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과 중국
훈민정음서문과 최만리 등의 상소문을 살펴봄으로서, 언문의 정체와 훈민정음의 목적을 알게 되었고, 훈민정음이 누구를 위해 시행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동국과 중국의 관계를 알 수 있었고, 동국사를 복원하는 시초가 될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열정과 시간만 있다면, 운서들을 비롯하여 여러 서적을 살펴보아 그러한 사실을 수십 번 다시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실록에서도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지만, 필자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다. 이제, 단지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동국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뿐이다.
증거를 좋아하는 실증사학자에게는 이 글이 읽을 가치가 없을 것이다. 사실, 증거라면 서문과 상소문이 있지 않는가,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도대체 얼마나 더 필요한가? 한자의 발음표기를 위해 언문으로 만든 훈민정음이 중국에 내려졌다는 사실은, 더 이상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글은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설명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서문과 상소문을 비롯한 여러 서적들과 그동안 필자가 나름대로 추정해온 글을 참고하여, 동국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그래서, 근거를 나열하지는 않는다. 동국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 궁금해 하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 차원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견해일 뿐, 증명은 뜻 있는 이들의 몫이다.
강단학계는 ‘한반도의 동국이 조선이고 중국대륙의 중국은 중국이다’라고 말하고, 재야의 대륙조선론자는 ‘한반도의 동국은 조선의 변방일 뿐이고 중국대륙의 중국이 조선이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한반도의 동국이 조선이고 중국대륙의 중국도 조선이다’가 진실이다. 조선은 동국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천하의 이름인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혹자에게는 말장난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도 조선이고 중국대륙도 조선이라는 것이 사실이다. 로마시市가 로마이고 로마제국帝國도 로마이다. 멕시코시티도 멕시코이고 멕시코(國)도 멕시코이다. 이러한 경우는 수두룩하다. 특히, 고대에는 도시국가가 바로 제국이 되는 것이고 제국의 모든 것은 수도首都로 모이는 것이다. 그런데, 동국과 조선은 조금 다르다. 천하의 수도는 중국이라 할 것인데, 중국의 위에 동국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동국과 중국의 관계, 그것을 아는 것이 한반도도 조선이고 중국대륙도 조선이 되는 까닭을 이해하는 것이다.
동국과 중국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도 아니고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도 아니며, 종주국과 종속국의 관계도 아니고 황제국과 제후국의 관계도 아니며, 이웃국가는 더더욱 아니다. 동국과 중국은 하나이다. 동국의 왕이 회장이라면 중국의 왕은 사장이 되는 것이다. 어떤 회사에서 아버지는 회장이고 아들은 사장일 때, 사장실은 회사 건물의 내부에 있고 회장실은 회사 건물과는 별도의 건물에 자리 잡았을 때, 그것이 바로 동국과 중국, 천하의 모습인 것이다.
혹자는, ‘그렇다면 동국과 중국을 비교하여, 중국의 궁궐은 크고 화려하고 동국의 궁궐은 작고 초라한데, 중국의 땅은 넓고 동국의 땅은 좁은데, 중국은 인구나 경제, 군사력 등에서 월등하고 동국은 왜소한데, 중국이 아버지이고 회장이 되는 것이지, 어떻게 동국이 아버지가 되고 회장이 될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모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부모는 자신이 헐벗고 굶주려도 자식만은 잘 입히고 배부르게 한다. 부모는 자식을 질투하지 않고, 자신은 초라해도 자식의 화려한 모습은 기뻐한다.
경제력, 군사력 등에서 월등한 중국이 뭐가 아쉬워서, 동국을 상국上國으로 모시겠는가? 혈연적으로도 별 관계가 없고, 그렇게 할 다른 이유도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이 동국을 떠받들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의 우리는 상상이 잘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다. 당신이 부모를 부모로 떠받드는 이유가, 부모가 당신 보다 힘이 세기 때문인가, 부모가 당신 보다 부자이기 때문인가, 부모에게서 무엇인가 얻을 것이 있어서인가? 부모를 부모로 떠받드는 것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백년 이전의 동아시아 사람들에게는 동국이 그러한 존재였었고, 그것이 상식이었다. 그래서, 중국인 원나라도 청나라도 동국을 섬긴 것이다.
동방은 동국의 내전內戰과 중국의 내전, 동국과 중국의 전쟁이 있었다. 문제는 동국과 중국의 전쟁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동국과 중국을 이웃나라로 여기고 있었기에, 제대로 된 역사를 몰랐다. 부모와 자식의 다툼은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아버지의 형제들이 회장직을 다투는 것이 동국의 내전이고, 조카 형제들이 사장직을 다투는 것이 중국의 내전이다. 그런데, 다른 형제들을 물리치고 사장직을 차지했다고 해서 사장이 되는 것은 아니며, 회장의 허락을 받아야 사장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회장직을 차지했다고 해서 회장이 되는 것은 아니며, 사장의 인정을 받아야 회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동국과 중국이 그렇게 많은 전쟁을 한 것이며, 전쟁 직전까지 간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동국이 전쟁에서 지고도 나라를 유지한 것, 고구려가 당을 정벌하고도 다시 돌아온 것이, 동국이 부모이고 중국이 자식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자는 약자에게 여자를 내어주지 않는다. 강대국이 약소국에게 여자를 내어주는 경우는 없다. 여자를 내어주는 경우는, 자신이 약자이거나 상대에게서 그 보다 더 큰 것을 얻어낼 때이다. 한반도의 고려가 몽골에게 졌는데, 나라가 망하기는커녕 원나라 황제의 딸을 얻어낸다. 혹자는, 부마국의 지위를 얻은 것이라며 평가절하 한다. 그러나, 몽골의 입장에서 한반도의 고려를 부마국으로 삼을 이유가 무엇인가?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서, 딸까지 내어준다. 몽골의 정복사征服史에서 이러한 경우가 있었나? 일제가 동국을 침략하여 강제합방을 했다. 설에 의하면 고종도 독살하고 순종도 독살한 일제가, 뭐가 아쉬워 이방자를 영친왕과 결혼시켰는가? 일제가 나중에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동국의 모든 것을 없애려 했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몽골이나 일제가 그러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동국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동국이 부모와 같은 존재가 되는가? 이 질문의 답이 이글의 주제이다. 이제 하나하나 알아보자.
백성百姓을 민民이라 하는데, 정치계의 왕王이나 치자治者가 일반인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왕이나 치자는 인人이다. 그래서, 인민人民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중생衆生은 종교계의 신神, 선仙, 불佛이나 수행자가 일반인을 가리키는 단어이지만, 대중大衆이라 하여 지금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백성과 중생을 합해서 민중民衆이라 한다. 제정분리의 사회에서는 백성과 중생을 별개의 단어로 사용하지만, 제정일치의 사회에서는 백성과 중생이 같은 단어가 된다. 유교의 이씨조선은 제정일치의 사회였다. 이씨조선만이 아니라 왕씨고려나 신라, 고려, 조선 등 모두가 그러했다. 지금의 대한민국도 민주주의라는 종교에 의해 제정일치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민民과 중衆은 단순히 ‘비슷한 뜻의 단어’가 아니라, 동국과 중국을 구별하는 단어인 것이다.
불교의 세계에서는, 불계佛界에 사는 이들을 가리켜 부처라 하며 속세俗世에 머무는 이들을 보살이라 하고, 불계의 백성을 중생이라 하고 속세의 백성을 속민俗民이라 한다. 유교儒敎의 세계에서도, 동국에 사는 이들을 가리켜 선비(彦)라 하며 중국에 머무는 이들을 선비(士)라 하고, 동국의 백성을 중衆이라 하고 중국의 백성을 민民이라 한다. 동국과 중국을 구별하는 이자동의에 의해 만들어진 단어에는 언사彦士, 민중民衆, 리속俚俗 등이 있다. 동국과 중국의 어디가 되었든지 올바른 것을 가리켜 정正이라 하고, 바른 것은 아니지만 널리 쓰이는 것을, 속세俗世인 중국의 것을 속俗이라 하고 선계仙界인 동국의 것을 리俚라 한다. 말(言, 語)에 있어서 중국의 것을 속언俗言, 속어俗語라 하고 동국의 것을 언諺, 언어諺語라 한다. 또, 표준어가 아닌 중국의 지역어를 방언方言이라 하며 동국의 지역어를 리언俚言, 리어俚語라 한다. 중국의 정음正音을 화음華音이라 하고 동국의 정음은 동음東音이라 한다. 정음이 아닌 널리 쓰이는 음 중에, 중국의 것을 속음俗音이라 하고 동국의 것을 언음諺音이라 한다. 속언俗言, 속어俗語, 속담俗談, 속화俗話는 중국의 상담常談이고, 리언俚諺은 동국의 상담이다. 그리고, 속언俗諺은 중국과 동국 즉, 온 세상에 내려오는 상담을 말한다.
백성은 곧 중생이다. 중생은 하늘이 아닌 땅(地)에서 살고 있다. 천상天上의 신, 선, 불, 도사道士, 보살菩薩은 땅을 내려다보며 중생을 구제救濟하는데, 중생이 살고 있는 땅을 속俗이라 일컫는다. 땅은 하늘 아래에 있으므로 땅을 천하天下라 일컫기도 한다. 천하의 중심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자者가 중국이므로, 중국이 곧 천하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중국을 속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며, 중국을 속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은 하늘나라 밖에 없다. 천하를 다스리는 중국의 왕을 가리켜 천자天子라 일컫는데, 천자는 천제天帝의 아들이다. 천제는 하늘나라의 임금인데 곧 하느님이다. 천자는 천제의 명을 받아 천하를 다스린다. 따라서, 중국의 황제를 지배하며 명을 내리는 자는 천제 밖에 없다. 그리고, 천제가 사는 곳을 천국天國, 신국神國, 천계天界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의 천자를 추상적抽象的이고 종교적인 개념의 존재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천자는 구체적具體的이고 정치적인 개념의 존재이다. 천자가 있으면 당연히 천제도 있는 것이다. 천제가 아들에게 중국의 왕이 되어 세상을 다스리라 명하였으니, 중국의 왕을 가리켜 ‘천자’라 하는 이유이다. 천자에게 명을 내리는 천제가 살고 있는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이씨조선에 있어 천국, 신국은 동국이며 ‘동국의 왕(東君)’이 바로 천제天帝이다. 혹자는 청제靑帝를 동군東君이라 하는데, 황제黃帝가 동군이다. 혹자는, 약소국인 우리나라가 부끄러워서, 우리나라가 강대국이었으면 해서, 우리나라도 천자의 나라였었던 적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국의 왕은 단 한 번도 천자였던 적이 없었다.
혹자는, 동국과 중국이 있으니 서국西國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국의 상대어相對語는 중국이고 중국의 상대어는 동국이다. 중국이 없는 동국은 동국이 아니며 동국이 없는 중국도 중국이 아니다. 동東이 ‘동, 서, 남, 북, 중’의 동을 말하는지, ‘동, 서, 남, 북’의 동을 말하는지, ‘동, 서’의 동을 말하는지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 동양東洋과 서양西洋이 있으니 중양中洋도 있는가? 그래서, 말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최근에는,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中東)’를 가리키는 말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남한南韓과 북한北韓이 있으니 중한中韓도 있는가? 이왕 말을 만들기로 했으니 ‘재외동포在外同胞’를 중한이라 하면 좋겠다. 남극南極과 북극北極이 있으니 적도赤道를 중극中極이라 하자. 중극도 만들었으니 동극東極과 서극西極도 만들자. 말장난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천하에는 동국과 중국만 있지, 서국이나 북국, 남국은 없다.
종교적 개념의 천국은 지상地上에 있을 수 없다. 지상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늘에 있기 때문에 천국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 개념의 천국은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물리적 실체를 가져야 정치적 개념으로서의 천국인 것이지, 추상적이고 비물리적非物理的인 허상虛像이면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천하의 중심이 되는 나라인 중국을 다스리는 천자에게 있어, 천자의 고향인 천국이 땅(天下)에 자리할 수는 없다. 정치적인 천국이 종교적인 천국처럼 허공虛空에 자리할 수도 없으므로 별지別地가 필요한 것이며, 그 별지에 천국이 자리를 잡는 것이다. 그런데,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언제 부터인가 그 천국이 항상 중국의 동쪽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국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씨조선의 동국은 한반도에 있었고, 한반도를 조선이라 불렀다. 그런데, 동국 즉, 하늘의 이름이 조선이므로, 천하 즉, 하늘아래의 이름도 조선인 것이다. 따라서, 중국대륙도 조선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동방東方=동국東國’이라 알고 있는데, 동방東方은 동국東國이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방을 ‘동쪽, 동쪽의 땅, 동쪽의 나라’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우리나라(한반도)를 가리키는 말로 알고 있다. 그러나, 동방을 동국이라 할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여러 서적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인, ‘아동방我東方, 오동방吾東方’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만약, ‘동쪽’이라면 ‘동東’이라 하지 동방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 ‘동쪽의 땅’은 ‘동토東土’라는 말이 쓰이고 있고, ‘동쪽의 나라’는 ‘동방東邦, 동국東國’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중국에서도 동방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며, 동양東洋을 의미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국(중국대륙)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혹자는, 현재의 중국인들이 동방을 동양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 근세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방이라는 말은 예부터 동양과 같은 개념으로 쓰이고 있었으며, 서역西域에 상대하는 말로 쓰였다. 중국에서는 동방이 중국대륙, 천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서적에 등장하는 ‘아동방, 오동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당연히, 현재의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동방과 같은 뜻 같은 개념의 단어인 것이다.
하늘은 둥글고(天圓), 땅은 네모나고(地方), 사람은 세모(人角)이니 천하를 방方이라 일컫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동방東方은 동국東國이 아니다. 동방東方의 상대어는 서방西方인데 곧, 서역西域이다. 방方이 천하이므로, 동방은 ‘천하의 동쪽 부분, 동쪽에 있는 천하’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만약, 천하의 동쪽 부분을 가리키는 뜻으로서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단어라면, 한반도를 중국대륙의 동쪽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한반도가 중국의 동쪽에 있는 것과 중국대륙의 동쪽 부분이라는 것은 전혀 다르다. 또, 한반도를 동방이라 하면 중국대륙의 서쪽 부분을 서방西方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러한 역사적 사실이 있는가? 서방에 해당하는 단어인 서역이라는 말이 쓰였지만, 서역은 중국대륙의 서쪽 부분이 아니라 중국대륙의 바깥 지역이다. 동방에서 서쪽을 서방이라 하지 않고 서역이라 한 이유는 이러하다. 서방이라 하면, 천하가 동방과 서방의 둘로 나뉜 것이 되어, 천하의 주인이 하나가 아닌 둘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동방은 서역에 대해 ‘동쪽에 있는 천하’를 뜻한다. 어떤 사정에 의해, 천하가 동쪽으로 이주했거나 줄어들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대에는 아시아가 조선이었으며 천하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짐작하건대, 조선의 영역이 동방으로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동주東周 때부터로 추정된다. 결국, ‘아동방, 오동방’은 중국대륙이 조선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동국의 왕을 하느님이라 하니, 혹자는 이해를 잘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른바 ‘사이비 종교집단(단체)’이라는 것도 ‘국가國家’와 다르지 않다. 사실, 국가라는 것도 일종의 사이비 종교집단이다. 우리가 그 안에 몸담고 있어서 착각하고 있을 뿐, 국가도 엄연히 사이비 종교집단이다. 다른 점은, 사이비종교는 외부의 통제를 받지만 국가는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좋은 예로, 북한을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북한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가 그러하다. 단지, 그 구성원이 순순히 복종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망명을 하게 되면 착각에서 벗어난 것이 된다. 원래, 종교의 순수한 개념에서는 국가나 사이비종교나 다 똑 같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탈속을 추구하는 것이고, 세속과 타협한 종교단체는 이미 사이비가 되는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것도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동국東國이라는 것도 사이비라 할 것이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상식이자 진리였었다. 이른바 ‘환인천제桓因天帝, 환웅천황桓雄天皇, 환검천군桓儉天君(王儉檀君) 등’의 ‘천제, 천황, 천군’은 모두 하느님을 뜻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단군조선을 그대로 이은 이씨조선의 왕도 하느님이 되는 것이다.
근세조선의 16c~19c에 천군소설天君小說이라는 장르(genre)가 있었는데, 그 저자들은 유학자儒學者이다. 천군전天君傳, 수성지愁城誌, 천군연의天君演義, 의승기義勝記, 남령전南靈傳, 천군본기天君本紀, 천군실록天君實錄 등의 일곱 편이 천군소설로 규정되어 있다. 학계에 정리된 것이 그러하다. 마음을 의인화擬人化한 소설로서 불경佛經과 장자莊子가 어떻고 성리학性理學이 어떻고 하는데, 다 쓸데없는 소리이고 쉽게 말하자면, 소설을 빌어 단군조선의 세계관을 풀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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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臣 등이 엎드려 생각하오니, 만승萬乘의 임금은 천자天子라 이르고 천승千乘의 임금은 제후諸侯라 이르는데, 천자와 제후가 존귀尊貴하게 되는 것은 그가 토지와 인민人民을 지니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토지가 때에 따라서 분열되고 인민이 때에 따라서 이반離叛한다면 존자尊者가 그 존尊함을 잃어버리고 귀자貴子는 그 귀貴함을 잃게 되어서 도리어 필부匹夫의 본래부터 낮고 천함만 같지 못하나니 ~중략~ 어찌 천군天君이 토지 없이도 높고 백성 없이도 귀하여 천지天地와 더불어 오래가고 일월日月과 더불어 항상 있는 것과 같겠습니까? 라고 하였다.(천군실록天君實錄, 김광형金光涥 역譯){한국韓國의 시원사상始源思想 - 박용숙朴容淑 저著, 2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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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산崑崙山의 아래 얽히고설킨 그 위에 나라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유인씨有人氏라 하였다. 그 땅은 원로산圓顱山에서 교지交趾에 이르니 국토는 일동一同(주;백리百里의 땅)에 지나지 못하였으나, 예禮와 의義로써 제후들의 추앙推仰을 받아 실로 중국의 동맹同盟을 주관하여 상제上帝의 덕업德業을 밝혔으니 임금은 곧 건원제의 아들이다.(천군전天君傳, 김광형金光涥 역譯){한국韓國의 시원사상始源思想 - 박용숙朴容淑 저著, 2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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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제乾元帝가 태초원년太初元年에 조칙詔勅을 내려 이르기를 ‘짐은 아득히 높은 그 위에 있으나 임금의 일이 참으로 번잡하여 홀로 운영하지 못하겠으니 누가 짐을 도와 이를 다스릴 이가 있으면 짐이 장차 하토下土에다가 은총을 베풀어서 모든 관리들을 잘 거느리도록 하겠노라’하니 모두 이르기를 ‘맏아드님이 적당합니다.’라고 하였다. ~중략~ 원월갑인元月甲寅에 건원제께서 태사太史로 하여금 유인씨 외의 지역을 정하도록 명령하여 맏아들을 이곳에 봉封하니, 나라 사람들이 그를 높이 받들어 천군天君이라 불렀다. 천군의 첫 이름은 리理인데 인간세계에 봉해지자 이름을 심心이라 고쳐서 흉해胸海에 도읍을 정하였다.(천군전天君傳, 김광형金光涥 역譯){한국韓國의 시원사상始源思想 - 박용숙朴容淑 저著, 291p}
동국과 동군의 성격과 개념에 대해 알 수 있는 글이다. 이씨조선의 유학자들은 단군조선의 정확한 기록은 잃어버렸을지라도, 동국과 중국의 관계와 세계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펼쳐놓은 것이 천군소설이다.
이씨조선의 동국은 한반도에 있었지만, 이른바 ‘반만년역사’의 동국이 줄기차게 한반도와 만주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하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한반도와 만주에 자리하였다고 해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다. 동국은 비교적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천하의 어디라도 별지別地를 정하고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중동中東에서 극동極東으로 이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이탈리아의 로마가 천재天災나 다른 사정으로 폐허가 되어 로마시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려 할 때, 그들을 난민難民이라 한다. 난민이 다른 곳에 정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먼 거리를 이동하여 한 곳에 모여 살기는 더욱 어렵다. 난민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어느 곳이든지 토착민이 자신의 터전을 내어주는 일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로마에 있는 바티칸이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바티칸이 지금 여기 한반도로 옮겨 온다면? 물론, 우리나라에 국교가 있고 가톨릭이 국교라 가정하자. 너무 뻔하다. 쌍수 들고 환영할 뿐만 아니라 서둘러 모셔올 것이다. 또한 이주하기도 쉽다. 마찬가지로, 동국이 그러하다. 동방의 동국이 바로 중세유럽의 바티칸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국이 동방에서 중동으로, 다시 동방으로 이주하였다 하더라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인 것이다.
동국은 지상천국地上天國 즉, 지상에 구현具現된 천국이다. 하늘을 표현한 것이 오가五加이고 땅을 표현한 것이 구이九夷이다. 즉, 오경五京은 천국을 나타내고 구주九州는 천하를 나타내는 것이다. 지상을 천하라 하는데, 원래는 천국의 천제가 직접 천하를 통치했으나, 언제 부터인가 천자로 하여금 중국에서 천하를 다스리게 하였다. 그 때부터 동국과 중국이 생겨난 것이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라는 말처럼, 동국에게는 천하를 천국처럼 만드는 것이 지상至上의 목표가 된다. 천하가 천국이 되는 것을 가리켜 문명文明이라 하고, 중국이 곧 천하이므로 문명을 중화中華라 하는 것이다. 하늘나라인 동국은 세상을 중화로 만드는 것이 책무인데, 그러한 일을 가리켜 사대모화라 하는 것이다. 사대모화는 이씨조선 때 생겨난 것이 아니고 고려나 신라 때 생겨난 것도 아니다. 사대모화는 동국 즉, 환인천제桓因天帝의 환국桓國 때부터 시작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동국사東國史 즉, 한국사韓國史이다.
한국사韓國史의 왜곡을 이야기 할 때, 대부분 고대사古代史를 말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가장 왜곡이 심한 것은 동국과 중국의 관계이다. 동국과 중국의 관계가 올바로 서면, 고대사의 복원에도 큰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대사近代史와 현재의 역사 흐름을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과 미국, 일본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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