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夷 - 10. 동이는 소수 엘리트 종교집단이다.
동아시아에는 두가지의 역사가 존재한다. 동이史로 표현되는 천국(신시, 조선)의 역사와 주변 지상국들의 역사로 나뉜다. 현재의 학자들은 동이史와 주변國史의 구별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구별을 못함으로서 동아시아史의 정체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다행인지... 일부에서는 한국사, 일본사, 중국사 등의 구별이 무의미하고 동아시아史로 묶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동이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민족적인 시각이나 국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이 우리 민족으로 해석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그렇게 따져 나가다 보면, 모든 인류가 우리 민족이 될 것이다.
사실, 모든 인류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고 한 형제라 한다.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 민족이나 인종을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여기서의 구별은 '전 인류는 하나, 형제'라는 의미로서가 아니다. 현대의 민족에 대한 개념으로 바라 보았을때, 동이(족)와 주변민족들과의 관계에 관한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조로 인식되고 있는 동이와 주변 민족들과의 구분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우리는 동이의 활동 영역을 동이의 거주지(?)로 해석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이것 또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현 교과서에 동이와 조선의 영역이 다르게 표시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 이유가 고대의 국경, 국민의 개념이 지금과 다르기 때문인가? 정말로 고대와 현대의 개념이 다른가? 동이족이 세운 조선의 세력권이 같은 동이족의 거주지(영역)보다 작은 이유가 무엇인가? 왜, 조선은 동이족의 전 영역에 그 세력을 떨치지 못했는가? 조선 세력밖의 동이족 영역은 지금의 연변과 같은 모양인가?
동이가 동이족이며 다수의 일반 백성들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동이와 조선의 영역이 서로 다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동이가 소수 엘리트라는 해석이 받아 들여진다면 동이의 활동영역이 크게 확대 될 것이고 또, 동이의 거주지가 아사달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현대와 고대의 사회가 많은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시대나 장소에 관계없이 많은 유사점을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선과 같은 나라가 현대에는 존재하기 불가능하다. 그런데, 고대에 존재 할 수 있는가? 분명 조선은 존재했다. 그렇다면, 그 조선이 지금의 국가적인 형태를 띠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 조선은 봉건제의 모습이었다. 봉건제의 기원이나 참 모습에 대한 해석도 다시 해야 할 것이다.
일본교포인 후지모리가 페루의 대통령이 된 것과 같은 모습으로 동이(족)가 화하족의 시조나 건국자들이 되었다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더군다나, 시조나 건국자가 동이라고 해서 그 일반 백성들까지 동이(족)라고 보는 것은 큰 잘못이다.
봉건제의 모습이 아닌, 현대의 국가 개념이나 제국주의의 식민지 개념으로 조선을 바라 보아서는 안된다. 텃세는 그 어디에나 존재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결코, 텃세를 무시하고 국가나 제국의 모습으로 조선이 동아시아나 세계를 통치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동아시아를 지배한 조선의 역사가 있는데 그와 동시에 화하족의 역사나 다른 민족의 역사가 함께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조선은 중세의 몽골제국의 모습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선의 모습, 봉건제의 참 모습을 엿 보기를 원하는가? 카톨릭, 로마의 교황청이 가장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카톨릭의(종교적인) 모습이 아닌 국가적인 모습의 조선은 고대나 현대 그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
그 로마 교황청이 조선이고 단군이 교황이고 신부나 수사가 동이라는 말이다. 중세의 카톨릭과 교황청은 분명히 조선의 모습과 아주 유사하다.
동이의 정체에 대한 해석이 크게 세갈래로 나뉜다. 그 세가지의 견해를 살펴 보자!
1. 중국(?)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 여러 민족들. ==> 사대주의나 자기비하한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있는 일부와 일부 강단의 주장이다. 우리민족은 동이(들)의 일부라는 견해로서, [동이≠우리민족]이고 [동이⊃우리민족]이라 한다.
2. 중국(?)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 우리민족. ==> 대부분 민족적 우월성이 충만한 이들의 주장이다. 민족사학자들이나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기도 하지만, 중국학자나 일부 강단에서도 주장하고 있는 해석이다. 풍류도와 같은 종교성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동이족 사회의 일면일 뿐, 종교가 크게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가히 동이족의 개체수를 짐작하기 어렵다. 거의 모든 동아시아의 민족들이 동이족의 후손이라 보고 있다.
3. 東과 관련된 소수의 엘리트 종교집단. ==> 본인의 주장이다. 동이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결성된 소수 집단이라는 견해로서, 종교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동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설문(說文): 자해(字解)
[夷는 동쪽에 사는 사람들이며, 활궁(弓)자와 큰 대(大)에서 따온 글자로, 그 사람들은 어질고 오래 살며, 죽지 않는 군자가 있는 나라이다.]
==> '동쪽에 사는'이라는 구절만 가지고 1번으로 해석할 수 없다. '弓과 大에서 따온 글자로, 그 사람들은 어질고 오래 살며, 죽지 않는 군자가 있는 나라이다.'라는 구절은 2번과 3번, 두가지의 해석을 해도 모두 맞다 할 것이다. 그러나, 弓이나 大의 뜻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궁이 일반적인 무기로서의 활이 아닌 삼지창(종교적인 활)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두말 할 것 없이 3번으로 해석된다.
또, 大는 왜곡되지 않은 事大主義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현대에는 사대주의라는 단어가 종교와 무관한 어휘로 인식되고 있지만, 원래의 事大는 종교적인 용어였다. 군자는 유교에서 聖人(Master)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역시 종교적인 용어이다.
1번으로 해석될 수는 없으며, 2번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3번으로 해석하면 모든 아귀가 들어 맞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설문(說文): 대부(大部)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순리(順理)를 따르는 성향이 있으나, 오직 동이(東夷)만이 큰 것을 따르니
대인이다.(惟東夷從大大人也)
이(夷)의 풍속은 어질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살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곳은) 죽지 않는 군자가 있는
나라이다.(夷俗仁仁者壽故有君子不死之國)
살펴보면 그곳은 하늘도 크고 땅도 크며 사람 역시 크다.(按天大地大人亦大)]
==>'큰 것을 따르니'는 事大를 말한다. 또, 事大하는 이를 大人이라 한다는 말이다. 大人은 군자와 같은 말이다.(大人을 '덩치가 큰 사람'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더이상 할 말은 없다.) 지금의 부정적인 이미지의 사대주의로 윗 구절을 해석하면, 군자는 주체성 없는 소인배나 역적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군자는 결코 소인배나 역적이 아니다.
역시, 大의 뜻이 무엇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大는 우리말의 한(Khan, 韓)과 같은 말로 보아야 한다. 앞글에서, 한이 '크고 밝은 하나'라는 뜻이라고 말했었다. 그 '크고 밝은 하나'는 바로 神을 묘사한 수식어로서 종교와 깊은 관계가 있다. 곧, 大는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事大는 자기비하나 주체성 없이 남의 것을 모방하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神을 숭배하는 것, 또는 神性(유교의 仁)을 닮거나 발현시키고자 함을 말함이다.
'군자불사지국'에 대한 해석은 조금 까다롭다. 위의 기록을 남길 당시의 모습을 기록한 것인지, 전해지는 전설이나 기록을 인용한 것인지에 따라, 그 해석이 천지차이가 된다. 그런데, 위의 기록은 전설이나 기록을 인용한 것으로 보이고 당시의 모습을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따라서, 불사지국이 어디인지는 알기 어렵다. 물론, 추측하는 바는 있지만 다음 기회에 다루겠다.
역시 1번으로 해석될 수 없다. 2번으로의 해석은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3번으로 해석해도 된다. 2번과 3번 중에 어느 것이 더 올바른 해석일까?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
[동방을 이(夷)라고 한다. 夷는 곧 뿌리이며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한다고들 한다. 모든 것은 땅에 뿌리박고 있으므로 천성이 유순하고 道로써 다스리기 쉬워서 군자의 나라이자 죽지 않는 나라(不死國)가 된 것이다.]
==> '동방을 이라고 한다.'에서 [東=夷]라고 말하고 있다. 東이 단순히 방위적인 개념으로만 쓰이지 않았다는 근거로 볼 수 있다.
'夷가 곧 뿌리'는 모든 문명의 근원이라는 뜻으로, 기록자들에게 동이가 문명을 전수해 주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한다는 말은 동이 구성원들의 심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일반 백성이 아닌 종교적 집단의 일원으로서의 품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의 '군자의 나라이자 죽지 않는 나라'도 동이가 세운 나라, 동이가 백성인 나라라는 의미보다는 동이집단 자체나 동이의
시원지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누누히 말하지만, (東)夷는 중국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 여러 민족들을 통칭하는 명칭이 결코 아니다. 기록자들이 동경하다 못해 숭배할 정도의 선진문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고 자신들에게 문명을 전파해준 스승으로 기록하고 있다. 현 미국의 선진(?) 문화에 우리가 물들은 것과 같지 않다. 동이의 문명이 수평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아래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특수한 집단만이 가능하다 할 것이다.
사기(史記) 사마천 著
[은나라의 (건국)시조 설은 동이족이다.]
==> 은나라의 시조 설이 동이였다라는 말이지, 은의 백성 자체가 동이라는 말은 아니다. 물론, 은의 백성 대다수가 동이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은의 백성이 곧 동이라는 말은 없다. 마찬가지로, 동이족의 국가 또는 동이가 세운 국가로 해석되는 여러 국가나 민족들의 일반 백성들이 동이일 수는 없다.
{중국문헌에 나와 있는 동이에 대하여 (정확히) 정리된 글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견이 많이 첨가된 웹페이지를 인용하다 보니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누구, 동이에 대한 원문과 사견이 배제된 해석을 잘 정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夷는 사람(人, 고대의 人은 평범한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이라는 뜻이라 하기도 하고 仁이라고 하기도 한다. 곧, 종교적 집단의 구성원인 夷를 잘 설명해 주는 말이라 생각된다.
공자의 조상이 동이족이므로 그 후손인 공자도 동이족으로서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는 것이 현재 대부분의 주장이다. 그러나, 동이가 민족이 아니라 종교적인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가리키는 명칭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공자의 조상이 동이라고 해서 공자가 동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중화의 인물 중에, 그가 동이라는 것과 그 조상이 동이라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신라의 화랑도는 소수 엘리트 집단이다. 화랑도는 분명 소수였으며 엘리트였고 종교적인 모습이었다. 유래나 기원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 역할이나 성과는 모두 인정하고 있다. 화랑도와 같은 집단이 조선이나 고구려, 백제에도 있었다 전해진다. 그 화랑도가 풍류도이며 동이인 것이다.
조선이나 신라를 동이라 부른 게 아니라, 그 조선이나 신라의 기둥인 화랑도를 동이라 불렀다는 말이다. 동이는 평범한 민족의 명칭이 아니다. 이씨조선 양반중의 문반, 즉 선비나 사대부로 불린 이들이 동이의 직접적인 후예라 할 수 있다.
또, 동이가 종교적 집단이라는 것은 그 구성원이 소수 엘리트로 이루어졌다는 반증이 된다. 현재 카톨릭의 신부나 수사를 '다수 일반'이라고 부르지 않고 '소수 엘리트'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동이의 종교적인 성격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런 종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집단이나 민족이 소수가 아닌 다수로 구성되고 오랜 역사나 전통을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동이와 같은 성격의 문명신 또는 선진문명인의 전설은 세계적으로 널리 전해 내려 오고 있다. 그 문명신이나 선진문명인들이 동이와 어떤 관계인가가 앞으로의 주요 주제가 될 것이다.]
그 화랑도나 선비가 동이의 잔재라는 말이다. 환국의 흑수백산에 내려왔다는 동녀동남 800, 환웅이 환국에서 거느리고 내려왔다는 3000의 무리,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기 위해 동녀동남 500을 보낸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동이의 정체와 그 동이가 현 우리 민족과 어떤 관계인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분명한 것은, 동이는 민족의 개념이 아닌 소수의 엘리트 종교집단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다는 것이고 그 동이의 직접적인 후예가 현 우리민족이라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동이와 현 우리민족의 관계는, 동이語가 현 한국어와 동일한지가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현 한국어와 다른 민족언어들(영어, 타밀어, 아람어, 수메르어 등)과의 유사성 또는 이질성도 동이의 정체성과 함께 다루어야 할 것이다.
사실, 동이가 소수 엘리트 종교집단이라는 근거로서 이 글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동이에 대한 세가지 해석 중에 어느 해석을 따르는 것이 한국사 또는 동아시아사의 미스테리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동이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짐작되는 바가 있다. 그리고, 동이의 구성원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유지 되었는지는 심청전과 같은 동이설화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이와 현 우리 민족 간의 연관성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할 것이다. 동이의 정체성과 우리의 정체성이 서로 상관 없다면, 이 글을 접는 게 옳을 것이다. 동이가 민족적인 모습이 아니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민족성을 나타내었다 할 수 있다. 동이가 그 조직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민족적인 모습을 띨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천주교인을 민족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크리스챤(천주교인)이라 부르는 게 맞다. 한국인이 대부분인 한국의 크리스챤을 한국민족 또는 한국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크리스챤은 대부분 한국인(민족)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동이의 민족성을 바라 보아야 할 것이다. 동이가 그 터전으로 삼았던 인종이나 민족을 현재에서 완전히 밝혀내기는 불가능하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동이가 특정한 인종이나 민족적인 모습을 띠었다고 하더라도 동이를 민족이라 불러서는 안된다. 동이를 동이족이라 부르는 것은 한국의 크리스챤을 한국인(민족)이라 부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한국의 크리스챤 중에는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아니라도 한국의 크리스챤이 될 수 있다. 한국내의 교회에서 한국인 크리스챤과 외국인 크리스챤이 함께 있을때, 그들을 한국인과 외국인으로 구별할 뿐이지 '한국인 크리스챤', '외국인 크리스챤'이라고 구별하지 않는다. 그냥, 크리스챤이라고 말한다.
현재, 우리는 중국문헌에 보이는 동이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할 필요가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국사의 미스테리가 풀릴 것이다. 부도지에 신라의 건국목적이 나온다. 결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법치주의가 종교에 앞설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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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다함님의 말씀은 저를 염두에 두신 듯 하군요!
[창끝이 세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적군에게 있어 최대 3군데의 상처를 내게 하여 살상효과를 높입니다.]
얕은 상처 세개를 내는 것과 깊은 상처 하나를 내는 것 중에, 어느 게 더 좋은 걸까요?
실제, 사극에서의 창날의 모습은 세군데의 상처가 아닌 한군데의 상처를 낼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가운데의 창날이 길게 앞으로 나와 있고, 양 옆의 두개의 날은 짧고 찌르는 기능으로는 매우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깊이 찌르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일 정도 입니다.
가운데의 창날도 다른 종류의 창에 비해 찌르기나 베는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두개의 옆날이 찌르기에 방해가 됩니다. 또, 횡으로 베는 동작을 취했을 때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글로만 설명드릴려니...^^;
베는 데 유용한 칼날(창날)의 모양은, 일본도나 청룡언월도와 같은 도(刀)의 모양이 유리하고, 劍은 베는 기능이 아니라 찌르는 기능을 위해 만들어 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즉, 베는 데 유리한 것은 刀이고 찌르는 데 유리한 것은 劍입니다. 창은 찌르는 기능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찌르기, 베기, 당기기 등의 여러가지 기능들을 요구합니다. 그 중의 한가지 또는 두가지 이상의 기능을 함께 발휘하기도 합니다.
삼지창(당파창)은 가운데 날이 검의 모양으로서 찌르는 데, 어느 정도의 기능은 발휘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만, 양 옆날은 찌르기나 베기, 당기기 등의 그 어떤 기능으로도 쓰기 어렵습니다. 결국, 삼지창은 찌르기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찌르기도, 다른 찌르기 종류의 창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찌르는데 있어서, 삼지창 처럼 날이 그렇게 길 필요도 없습니다. 무협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평범한 창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찌르는 기능만을 위한 평범한 창을 보면, 그 날이 삼지창에 비해 짧고 사용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찌르기만을 하는데 있어 삼지창은 무겁고 거추장스러울 뿐만 아니라, 빠르기가 떨어집니다. 또 특수 용도의 창 처럼, 삼지창은 특수한 용도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다른 찌르기 용도의 창 처럼 자루가 긴 것이 아니라 짧습니다.
분명한 것은, 삼지창은 '활을 크게 당긴' 모습을 본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삼지창을 당파창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저는 모릅니다. 언제 어떻게 삼지창이 무기로서 활약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원래의 그 목적은 종교적인 상징 도구입니다.
제 추측으로는... 새로운 무기나 군사력을 발전 시키기 위해 노력하던 중, 종교적 도구였던 삼지창이 우리 민족에게 널리 퍼져 내려오고 있었고, 그것을 본 이들이 그 원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무기로서의 삼지창만을 바라보고 새무기로서 개발하여(?), 삼지창이 무기로 조선 후기에 널리 보급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실례로, 몇년전에 'KBS 일요스페셜'에서 히말라야의 풍속과 풍경을 방송해 준 적이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중에, 서낭당의 돌무더기와 같은 형태의 종교적인 돌무더기가 있었고, 그 주변에 자루가 없는 삼지창이 수 없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 삼지창의 기본적인 모양은 우리의 삼지창과 같으나, 가운데 날이 비교적 짧았습니다. 크기는 대략 가로와 세로가 40 - 80cm 정도 되었습니다. 역시, 활을 크게 당긴 모습이었습니다. 아니, 쇠로 '당겨진 활모양'을 흉내 내어 만들었다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추신 : 요즘 제가 바빠서, 잠깐 들어와서 글 몇줄만 읽어 보고 나가고 있습니다. 저에게 해 주신 질문들에 대해서 답변을 못해드린 점 죄송합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글을 올리겠습니다.
'동이는 소수 엘리트가 아니다'라는 반문에 대한 글(동이는 소수 엘리트 집단이다)을 제일 먼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동이가 모든 종교의 근원이라는 설명은... 제가 동이에 대해 글을 쓰는 목적이면서, 가장 중요하고 결론에 해당되므로 당장 답해 드릴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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